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에서 처형된 네덜란드 태생의 마르하레타 젤러, 이른바 ‘마타 하리’는 지금까지도 여성 스파이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후대의 신화와 달리 실제 정보 활동의 성과는 미미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정보전에서 큰 성과를 남긴 여성 스파이들도 있다. 독일 출신의 소련 스파이 우르줄라 쿠친스키가 대표적이다. 열성적인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1934년 전설적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에게 포섭돼 소련 정보총국(GRU)의 스파이가 됐다. ‘소냐’라는 암호명을 받은 쿠친스키는 중국과 스위스를 거치며 첩보 경험을 쌓았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는 영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당시 소련은 서유럽 전역에 ‘붉은 오케스트라’로 불린 광범위한 간첩망을 운영 중이었는데, 이를 영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쿠친스키의 임무였다.
쿠친스키는 영국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며 군부 내부에 구축한 첩보망을 통해 잠수함 레이더 등 첨단 군사기술을 빼돌렸다. 또한 독일에 휴민트망을 침투시켜 나치 관련 정보를 수집해 소련에 보고했다. 이러한 활동의 배경에는 엘리트 공산주의자였던 가족의 지원이 있었다.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와 옥스퍼드대 교수로 재직하던 아버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에서 근무하던 오빠는 고급 정보의 출처이자 인맥 구축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무엇보다 그의 최대 성과는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을 앞당긴 데 있다. 영국 핵 과학자이자 소련 스파이였던 클라우스 푹스로부터 핵무기 관련 정보를 전달받아 모스크바로 넘긴 핵심 접선책이 바로 쿠친스키였다. 활동 기간 내내 평범한 가정주부로 위장해 영국 방첩망을 피해 온 그녀는 1949년 말 푹스가 체포되자 동독으로 달아났다.
서방을 대표하는 여성 스파이로는 에이미 소프가 있다. 미국인이었던 소프는 영국 외교관과 결혼한 뒤 2차대전 기간 영국 비밀정보국(MI6) 스파이로 활동했다. 빼어난 미모와 외교관 부인이라는 신분을 활용해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공작을 성공시킨 진정한 마타 하리였다.
소프는 1930년대 남편의 근무지였던 폴란드와 칠레 등에서 현지 고위 관료와 외교관 등에게 접근해 주재국 정보는 물론이고 독일의 체코 영토 병합 계획과 독일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 관련 정보까지 수집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멀어진 1940년 이후에는 MI6가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신설한 안보조정국(BSC) 소속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 워싱턴 외교가에 깊숙이 침투해 이탈리아 해군 암호문과 친나치 성향의 프랑스 비시 정권 암호책을 입수했고, 이는 연합군의 지중해 주도권 확보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점령에 큰 기여를 했다.
국가 정보 활동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정보기관의 작동 방식과 인적 구성도 빠르게 변해 왔다. 특히 남성 중심 조직으로 인식돼 온 정보기관에서 여성 요원 비율이 높아지면서 여성 간부의 증가도 이어지고 있다. 1992년 영국 보안국(MI5)을 시작으로 201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도 첫 여성 수장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116년 역사상 처음으로 MI6에서도 여성 국장이 탄생했다. 흥미롭게도 1995년 개봉한 영화 ‘007 골든아이’에서는 MI6 국장 ‘M’이 여성이었다. 미인계로 상징되던 여성 스파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정보가로서의 여성 스파이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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