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현수]FTX 사태가 드러낸 ‘코인 제국’의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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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형 창업가의 혁신과 철학 포장
그 속은 전형적인 금융사기에 불과

김현수 뉴욕 특파원
김현수 뉴욕 특파원
미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가상화폐가 주요 투자 자산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다. 경제 관련 TV방송 화면 하단에는 실시간 주가, 원자재, 환율, 채권 금리 지표와 더불어 가상화폐 가격 추이가 반영되곤 했다.

몇 달 전 로스앤젤레스(LA)로 출장을 갔더니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 홈구장이자 LA를 대표하는 공연장 ‘LA 스테이플스센터’가 ‘크립토닷컴 아레나’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미국 프로나 주요 대학 스포츠 홈구장 이름은 최근 잘나가는 산업을 대변한다. 지는 사무용품 유통업체 스테이플스에서 뜨는 가상화폐 거래소 크립토닷컴으로 변해 대비가 선명했다. 지난해 마이애미 다운타운에 있는 NBA 마이애미 히트 홈구장 이름도 ‘FTX 아레나’가 됐다. 20년 이상 ‘아메리칸에어라인 아레나’였던 곳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타격을 입은 항공업에서 팬데믹 ‘유동성 파티’ 속 급성장한 가상화폐 업계로의 세대교체를 체감할 수 있었다.

급성장한 가상화폐 업체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가상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했다. 이 업계 신뢰도 제고의 1등 공신은 바로 ‘코인판 엔론’ ‘코인판 리먼브러더스’로 현재 시장을 뒤집어 놓은 가상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30)이다.

저명한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 부모,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온 수재, 후줄근한 옷차림의 억만장자에 더해 창업 3년 만에 가치 320억 달러(약 43조 원) 회사로 키워 놓은 혁신가로 찬사를 받은 뱅크먼프리드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혁신형 천재’의 전형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슈퍼모델 지젤 번천, 미식축구 스타 톰 브래디와 공개 행사를 함께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시장에서 믿을 수 있는 인물’로 통했다.

그래서일까. 미국 현지에서 FTX 몰락이 주는 충격파는 상당하다.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이던 FTX가 11일 파산 신청한 이후 미 주요 언론은 매일같이 이 사태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억만장자에서 빈털터리로, 유명 연사에서 범죄 혐의 짙은 신세가 된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미래 미국을 이끌 것만 같던 혁신의 상징이 알고 보니 닳고 닳은 과거 금융 실패를 답습했다는 점에서 배신감도 크다.

금융 규제 당국 등이 조사 중이지만 FTX는 누군가 사줘야 가치가 올라가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고객 돈 10조 원을 유용해 FTX 발행 코인을 관계사가 사들이며 코인 가격을 올려 자산을 부풀리고, 이를 담보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다시 코인을 사들여 회사를 키웠다. 결국 부실을 들켜 돈을 떼인 피해자만 100만 명이다. 자산 부풀리기와 고객 돈 유용은 전형적인 금융사기 아닌가.

재무제표도 엉망이어서 총부채는 100억∼500억 달러를 왔다 갔다 하고, 피해자 수도 계속 달라진다. 새로운 FTX 최고경영자(CEO)이자 사실상 청산인인 구조조정 전문가 존 레이는 “이런 기업 실패는 처음 봤다”고 탄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독된 20대 창업자,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자산, 빛의 속도로 파산한 과정 같은 몇 가지를 빼면 엔론 사태나 버나드 메이도프 폰지 사기를 비롯한 과거 대형 금융 사고와 다를 바 없다.

혁신에는 으레 사기꾼과 투기꾼이 꼬인다. 몇몇 사기꾼 때려잡으려다 혁신 시장까지 없애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재 가상화폐 시장은 폰지 사기가 혁신을 가리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강력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 불가피하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가상화폐#ftx#코인#샘 뱅크먼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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