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보다 더 위험한 전방의 구멍[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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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김정은이 북한 간부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지난달 1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김정은이 북한 간부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2일부터 나흘 동안 미사일 35발을 쐈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미사일을 쏜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미사일을 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북한의 반응에서 강력하게 복원된 한미 연합훈련에 절대 기죽지 않겠다는 결기가 엿보이는 것과 동시에 신경질적인 짜증마저 읽힌다.

매뉴얼대로라면 한미 연합군이 공중 훈련을 하면서 비행기를 100대 띄우면 북한도 최소 동수의 비행기가 떠 맞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북한의 경제력으론 맞대응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공중 훈련뿐만 다른 훈련도 마찬가지다. 연료난도 문제지만 고물 장비들이 훈련하다가 손실되면 보충할 능력도 없다.

그러니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은 남쪽에서 어떤 훈련을 해도 미사일이든 포든 계속 쏘는 것뿐이다. 그런데 쏘는 것도 결국 소모다. 인건비가 거의 공짜인 북한의 미사일 생산단가를 우리 식으로 계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구형 스커드 미사일과는 달리 명중률이 정확한 최신 미사일은 비싼 전자부품 덩어리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미사일에 쓰일 반도체를 매우 어렵게 구입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미사일 발사도 큰 부담이다.

특히 끊임없이 지형을 대조하며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은 원리상 무인기라 할 수 있는데, 전자부품이 더 많이 든다. 2017년 한국에서 자주 발견됐던 북한의 조잡한 무인기를 떠올린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반도체 수급 여건상 생산 수량은 극히 제한됐을 것이다. 이런 비싼 순항미사일을 2발이나 울산 앞바다로 쐈다는데 합참이 부인해버렸으니 북한은 알아주지 않아 섭섭한 생각마저 들지 모른다. 물론 과거 북한 행태로 보면 순항미사일을 쐈다는 말을 믿기도 어렵다.

어쨌든 북한 형편에서 나흘 새 미사일을 35발이나 쐈으면 엄청난 지출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미 훈련에 무리하게 대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의 강력한 공군력이 북한을 급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평북 창성의 김정일 특각을 지켰던 전직 974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이 시작되면 김정일은 늘 가족을 데리고 창성으로 들어와 지냈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과 인접해 폭격이 어렵고, 여차하면 보트를 타고 순식간에 중국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한 뒤로는 이런 걱정은 크게 덜었다고 볼 수 있다. 핵이 없을 때도 공격하지 않았는데, 핵이 있는 지금 굳이 공격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또 경제가 거덜 난 북한을 점령해 2000만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도 없다. 이런 사실은 김정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받을 두려움은 과거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최근 대규모 군사훈련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이유는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한편으론 북한도 군사력을 점검할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남북이 9·19군사합의를 채택한 이후 우리도 훈련을 거의 못 했지만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김정은 역시 지난 4년 동안 북한군이 얼마나 해이해졌는지, 싸울 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사일 부대 역시 점검이 필수다. 유사시 제공권을 단시간에 빼앗길 것이 뻔하기에 북한 미사일 부대가 쏠 수 있는 미사일 수량은 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니 초기 몇 발을 불량 없이 확실히 쏠 수 있을지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좀 쐈다고 도발로 단정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가뜩이나 없는 미사일을 바다에 스스로 버리는데 우리도 나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도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대비해야 한다. 가령 2018년 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철수할 때 북한은 160여 개 중에 11개를 철수했지만 우리는 60여 개 중에 11개를 철수했다. 우리의 구멍이 훨씬 더 커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몇 발 쏘는지에 신경을 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9·19군사합의로 구멍이 뚫린 전방부터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사일#전략순항미사일#시험 발사#공중 훈련#비질런트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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