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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尹 정부, 지긋지긋한 ‘폭탄 돌리기’ 끝낼 때다[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05-20 03:00업데이트 2022-05-20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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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맞은 역대급 인플레 위기 국면
선심성 공약과 기존 지출 먼저 정리 필요
노동·교육 개혁 시의적절, 총력 쏟아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함께 글로벌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수입 원가가 오르면서 뾰족한 대응책도 없이 온 국민의 생활수준이 순식간에 낮아져 버렸다. 인플레이션은 필수재 소비 비중이 높은 서민들에게 특히 큰 고통을 안긴다. 그 여파가 서서히 나타나서 그렇지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위기보다 한국 경제에 훨씬 더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안 그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장률은 감소하고 저출산·고령화는 심화되고 있는데 역대급 인플레까지 출현했으니 앞으로 5년간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이란 초현실적 기치 아래 탄생했으나 실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국정과제들을 보면 좋은 말을 잔뜩 써놨지만 여론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어퍼컷 한 방은 없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면서 역대 최대 59조 원짜리 추경으로 임기를 시작하고 ‘병사 월급 200만 원’ 같은 현금성 포퓰리즘도 여기저기 약속해 놨다. 민간주도 성장을 위해 규제를 혁파하겠다는데 이미 존재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새롭게 꾸리겠다는 것 말고 구체적인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규제 철폐엔 대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뚜렷한 철학보단 선거를 의식한 흔적이 더 짙은 경제운용 패키지다. 이러한 기조는 대부분 대선 과정에서 수립됐다. 선거가 본격화된 2021년 하반기는 경제가 코로나19로 인한 단기 침체 국면에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을 때였다. 제조업과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다만 늦어진 백신 도입 등 이유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피해가 컸고 부동산 문제가 특히 2030세대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이 두 이슈만 잘 공략하면 선거도 이기고 집권 후 성과도 괜찮을 거란 정치적 계산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몇 달 사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대선 전이 역병과 부동산 국면이었다면 대선 후는 전쟁과 인플레 국면이다. 이전에 세운 전략이 더 이상 맞지가 않는다. 각국이 앞다퉈 긴축과 금리 인상에 나서고 ‘경제안보’란 명분 아래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을 밀어 주고 있다. 이렇게 긴박해진 환경에서 그냥 ‘적당한’ 수준의 나열식 정책들로 과연 지난 정권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려받은 재정 여건도 그 어느 때보다 열악하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정책도 수정이 필요하다. 더 명확한 우선순위와 단호한 실천의지가 요구된다.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인플레와 금리 상승은 곳곳에서 구조조정을 촉발할 것이다. 벌써 가상화폐 투기장에서 금융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폭락 사태가 일어났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급하지 않고 효과는 불분명한 선심성 공약과 기존 지출의 정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경기가 하강하면 자동적으로 세수는 줄고 실업급여 등 지출은 늘게 돼 있는데 나라 곳간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공공 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뿐 아니라 복지 체계도 전면 효율화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미래와 성장 지향적인 개혁 어젠다를 발굴하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국가의 중지(衆志)를 모을 수 있는 큰 이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첫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과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시의적절한 메시지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만 먹고사는 나라에서 인적 자본보다 우선시될 이슈는 없다. 아이들을 좀 더 창의적으로 키우고 청년들한테 좀 더 원하는 기회를 주려는 노력이야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방향만큼은 여러모로 잘 짚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혁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강력한 의지와 고도의 정치력이 받쳐줘야 할뿐더러, 특히 노동이나 교육 분야의 경우 그 범위와 내용이 하도 방대하고 복잡해서 대체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상대가 어려울수록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이 더 중요한 법이다. 이것저것 너무 많은 걸 하려다 보면 구심점을 찾지 못해 아무것도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 근본적이고 파급력이 큰 문제들을 선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지금 한국한테 진정 도움이 되는 건 글로벌 수준의 혁신이니 자잘한 국내용 이슈에다 귀중한 정치 자본을 허비해서도 안 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마저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혁까지 하자고 하면 큰 저항에 부닥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지율도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 지긋지긋한 ‘폭탄 돌리기’를 끝낼 때가 됐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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