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이야기 곁들이는 진짜 제주의 맛… 세계 무대에도 도전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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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치 만드는 ‘해녀의 부엌’

해녀 이야기를 음식에 입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극장식 식당인 ‘해녀의 부엌’에 입장한 고객들에게 김하원 대표가 마을 유래와 함께 해산물, 창업한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해녀 이야기를 음식에 입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극장식 식당인 ‘해녀의 부엌’에 입장한 고객들에게 김하원 대표가 마을 유래와 함께 해산물, 창업한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7일 오후 5시 20분경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포구 근처 허름한 창고. 입간판조차 확인하기 힘들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직원이 건물 밖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해녀의 부엌 북촌점’으로 안내했다.

내부에서 대기하는 동안 1970년대 북촌리를 촬영한 동영상이 상영됐다. 식사 장소로 이동하자 아늑한 공간에 14명만을 위한 식탁이 말발굽 형태로 놓여 있었다. 불턱(해녀들의 쉼터)에 둘러앉아 해녀와 오순도순 마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물결치는 파도의 형상을 한 사방의 벽에서 미디어 아트인 파노라마 영상이 펼쳐졌다. 배를 타고 나가 북촌리 해녀들의 주요 작업장인 다려도에 닿을 때나,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는 실제 현장에서 체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났다.

식탁에는 제주에서 제사상에 올린 귀한 음식인 상외떡을 비롯해 고사리나물, 뿔소라 삼합, 흑돼지 고기, 마른 두부 등이 잇따라 올려졌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음식에 얽인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북촌리 직전 해녀회장 박영숙 씨(67)가 해녀가 된 과정과 경험담을 들려줬다. 박물관에 장식된 해녀 이야기가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목소리였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동네 이웃처럼 친근하게 답을 해줬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의 신선 농수축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에 제주 해녀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9년 1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본점이 문을 열었고 북촌리 2호점은 지난해 11월 오픈했다. 극장식 레스토랑인 본점과 달리 2호점은 미디어아트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는 것이 특급호텔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 제주 마을과 해녀의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제주의 명소로 떠올랐다.

해녀의 부엌을 창업한 김하원 대표(31)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는 뿔소라, 톳의 판로가 막히면서 해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해녀 공연을 곁들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선보이기로 하고 30년 동안 닫혀 있던 종달리 어판장을 리모델링했다. 김 대표는 “해녀의 삶을 진솔하게 묘사한 시연을 보고 종달리 해녀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종달리 출신이다. 할머니, 큰어머니, 고모가 해녀인 집안에서 자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전공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해녀들의 힘든 사정을 듣고 창업을 결심했다. 해녀의 부엌이 문을 열자 인기가 폭발했다. 뿔소라 등 해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면서 판로까지 넓혔다.

이런 새로운 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 청년벤처기업인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동안 응어리졌던 한이 풀렸다’는 해녀 어르신의 말씀을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며 “제주의 가치를 담은 로컬푸드 레스토랑을 미국 뉴욕에서 선보여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종달리 본점은 금·토·일요일 점심과 저녁에 ‘해녀 이야기’ 공연을 연다. 최근 목요일 점심과 저녁에 ‘부엌 이야기’ 공연을 추가했다. 북촌리 2호점은 목·금·토·일요일 오전 11시 반, 오후 2시, 오후 5시 반에 공연을 한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해녀 이야기#해녀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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