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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안철수 책임총리論

입력 2022-02-07 03:00업데이트 2022-02-0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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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철수 트라우마’ 해소 카드는 경제 장관 인사권 등 보장 총리제
제왕적 대통령제 롤러코스터 탄 尹, ‘나부터 권력 나누겠다’ 솔선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012년 9월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 말을 인용했고, 자신의 저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의 서문도 이 말로 시작한다. 그만큼 ‘미래’는 안철수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話頭)다.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유럽 각국을 돌아보고 펴낸 이 책에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내가 과거부터 꿈꿔왔던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에서는 바깥은 쳐다보지 않고 안쪽만 바라보고, 서로 분열과 갈등만 반복하면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와 같은 중요한 미래 담론은 실종됐다”고 우려했다.

맞다. 국가의 미래를 논해야 할 큰 장(場)인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래 담론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이는 팔 할이 미래보다 과거를 헤집는 데 국정(國政) 에너지를 소진한 문재인 정권의 유산 탓이라고 본다. 밖으로는 왕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친중 사대(事大)와 구시대적 반일(反日) 선동, 안으로는 이전 정권 지우기를 겨냥한 ‘적폐청산’과 건국 이후 다져진 나라의 토양을 갈아엎는 역사 뒤집기와 주류세력 교체까지….

이런 정권이 연장돼서는 대한민국이 결코 미래로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안 후보가 절감할 것이다. 그러려면 야권의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도 모를 안 후보가 아니다. 그런데도 ‘안일화’ 같은 안일한 소리를 해댄다. 어쩌면 이는 ‘문제의 키는 내가 쥐고 있지 않다, 답(答)을 가져올 사람은 윤석열이다’라는 메시지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렇다. 먼저 손 내밀 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그냥 손만 내밀어선 안철수가 잡을 리 없다. 안 후보의 ‘철수 트라우마’를 해소할 카드가 필요하다. 그 카드엔 역시 ‘안철수 책임총리’만 한 것이 없다. 안철수 국무총리가 경제 분야 장관의 인사권을 사실상 보유하고, 모든 장관과 중앙행정기관장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책임총리가 되는 것. 안철수 총리가 나라의 미래를 열 경제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공동정부 형태다.

윤석열 후보로선 손해나는 장사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명분이 선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제왕적 권력을 건드렸다가 좌천된 윤석열. 문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다시 ‘산 권력’에 손을 대 신산(辛酸)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제1 야당 대선후보에 오른 인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롤러코스터처럼 겪은 그가 ‘나부터 권력을 나누겠다’고 나서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응답하는 길이다.

권력 분산을 솔선하는 건 윤석열이 집권하면 부인 김건희 씨 등 처가가 막후 권력을 휘두를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안 후보가 책임총리 제의를 거절한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를 구현하려 애쓴 후보로 남고, 이후 윤 후보로의 표 결집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안철수로서도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어차피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안철수로 단일화가 돼도 승산은 있겠으나, 명백한 야권 1위 후보를 제치고 ‘안일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포기하고 그대로 ‘고’ 한다면 막판 표 결집 현상 때문에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뻔히 보이는 정권교체의 길을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다가 정권 연장의 문을 열어준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안철수와 손잡으려면 ‘자강론’ 운운하며 ‘잔칫집’에서 한자리를 노리는 당내 세력들의 저항에 직면할 터. 그걸 극복하는 정치력을 보이는 게 검사 출신 윤석열이 국정 수임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안철수는 위의 책에서 “(정치 투신 후) 7년이 지난 지금, 실패와 패배, 실망과 비난,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함께 희망을 가졌던 분들께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더 큰 회한(悔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선 투표일까지 30일. 아직 시간은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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