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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탈모보험보다 더 중요한 것들

입력 2022-01-21 03:00업데이트 2022-01-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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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이 환자의 탈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기기를 사용해 검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에서는 포퓰리즘에 빗대 ‘모(毛)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탈모 치료제가 뭐길래 논란이 이어지는 걸까.

탈모 치료를 미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인체의 기능 손상, 즉 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의 시각이 나뉘는 것 같다. 물론 탈모 중에서도 원형탈모증이나 지루피부염 탈모증은 병으로 인한 손상이기 때문에 지금도 환자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다만 이번 논란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미용 차원으로 보는 남성형 탈모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해서 갑론을박이 커진 측면이 있다. 이들이 탈모 치료제로 먹는 약은 성분명 피나스테리드 계열(상품명 프로페시아 등)과 두타스테리드 계열(상품명 아보다트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탈모 치료제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페시아는 매달 5만7000원 정도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 약은 몇 번 복용하다가 끊는 치료제가 아니고 평생 사용해야 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다른 약인 고혈압 약이나 당뇨병 약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비싸다.

그렇다 보니 탈모인들은 전립샘비대증 약인 프로스카를 비급여(약 4만 원)로 처방받은 뒤 4분의 1로 잘라 프로페시아 대신 복용하기도 한다. 프로스카를 4분의 1로 쪼개 복용하면 프로페시아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 알약을 쪼개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본인 부담금은 월 1만 원 정도로 줄어든다.

만약 프로스카를 급여로 처방받으면 본인 부담이 더욱 줄기 때문에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많다. 이로 인해 의사와 현장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의사가 전립샘비대증이 없는 환자에게 프로스카를 급여로 처방하면 불법이다.

만약 탈모 치료제가 건강보험 지원 대상이 된다면 본인이 내는 부담금은 처방 금액의 20∼30%가 될 것이다. 앞서 말한 프로페시아는 월 1만∼1만5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그러니 탈모가 생긴 청년이나 중장년층들이 환호할 만하다.

그런데 탈모로 인해 정말 고통을 받고, 비싼 치료제 때문에 건강보험 지원이 절실한 환자들이 있다. 바로 난치성 원형탈모증 환자들이다. 이들은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스테로이드 주사제나 먹는 약으로는 치료 효과가 적거나 심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생물학적 제제나 ‘DPCP’ 치료제 등 다른 치료를 해야 한다.

생물학적 제제는 국내에 곧 도입될 예정인데 비용이 한 달에 70만∼100만 원이나 든다. DPCP 치료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세계적으로 이를 만드는 제약사가 없어 완제품으로 사용할 수 없다. 병원마다 자체적으로 만드는 실정이다.

심지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비보험 약값 때문에 처방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투약에 5억∼25억 원에 이르는 고가 난치성 질환 및 암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목숨이 오가는 약이다 보니 다른 어떤 약보다도 건강보험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

이처럼 고가 약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 요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 적용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대통령 후보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도입 급물살을 타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환자가 많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탈모도 심하면 우울증이 생기고 정상 생활을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이들을 배려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탈모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려면 건강보험 재정 부담 평가와 함께 사회적 합의, 안전성 평가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심의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당국은 이번에 탈모의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해 보는 한편 생사의 갈림길에서 약을 먹으면 살 수 있는데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삶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없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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