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데 수백억 드는 커피찌꺼기, 잘 쓰면 ‘친환경 자원’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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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박’ 다양한 활용법 주목
커피 한 잔 원두 15g… 99.8% 폐기
대부분 매립-소각, 탄소배출도 문제… 바이오 플라스틱 만들어 가구 제작
발열량 우수해 유럽선 연료로 사용… 관련법 미비해 국내 활용은 걸음마

환경부와 인천시, 경북도는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모아 축산농가의 퇴비와 냄새제거제로 활용하고 있다. 비료로 활용하기 전 커피 찌꺼기에서 미생물을 배양하는 모습. 환경부 제공
환경부와 인천시, 경북도는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모아 축산농가의 퇴비와 냄새제거제로 활용하고 있다. 비료로 활용하기 전 커피 찌꺼기에서 미생물을 배양하는 모습. 환경부 제공
통상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는 약 15g의 원두가 필요하다. 이 중 우리가 섭취하는 양은 전체의 0.2%(0.3g)에 불과하다. 나머지 99.8%에 이르는 14.7g의 원두가 그대로 커피 찌꺼기(커피박)로 버려지는 셈이다.

커피박은 커피 추출 과정에서 수분이 더해져 통상 원두 상태일 때보다 무게가 1.5배로 늘어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커피박은 약 35만 t에 이른다.

이들 커피박은 대부분 소각 혹은 매립된다.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커피찌꺼기 1만 t당 폐기물 처리 비용은 약 10억 원. 종량제봉투 가격과 매립비용만 따진 것이다. 만약 연간 발생하는 커피박 35만 t을 모두 재활용하지 못하고 폐기한다면 매년 350억 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이를 소각할 때 나오는 탄소(1t당 약 338kg)와 온실가스 등도 환경 측면에선 큰 부담이다.

○ 농촌에선 악취제거제, 도시에선 벤치로

사회적기업 포이엔이 커피 찌꺼기로 만든 의자(위쪽 사진)와 테이블(아래쪽 사진). 포이엔 제공
사회적기업 포이엔이 커피 찌꺼기로 만든 의자(위쪽 사진)와 테이블(아래쪽 사진). 포이엔 제공
이 때문에 최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커피박의 재자원화 방안을 찾고 있다. 2018년 5월 동식물성 잔재물의 수집과 운반,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하지만 여전히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물량이 대부분이다. 허가 받은 차량만 커피박을 수거할 수 있어 대량 보관과 운반이 쉽지 않다. 여기에 커피박이 재활용 자원이라는 국민 인식도 부족하다. 당국이 아직 커피박 중 어느 정도가 재활용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커피박 재자원화에 먼저 눈을 뜬 건 민간 영역이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포이엔이 그런 회사 중 하나다. 이들은 늘어나는 커피박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 2017년 이를 활용한 혼합 비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커피박이 영양분이 많은 유기물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포이엔은 커피박을 원료로 쓴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도 생산한다. 호숫가 등에서 흔히 보는 나무 무늬 난간이 이런 재질이다. 합성수지와 배합할 때 썼던 톱밥을 커피박으로 대체했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와 내장재 공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호철 포이엔 대표는 “1인용 의자 하나에 커피 찌꺼기 2.3kg이 들어가는데 이는 약 2.6kg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나무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환경에 기여하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커피박 재활용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커피전문점이 모아 놓은 커피박을 자치구별로 수거해 재활용업체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환경부와 인천시, 경북도 등은 도시에서 수거한 커피박을 축산농가에 공급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커피박은 가축 분뇨의 악취를 90%가량 없애는 효과가 있다.

○ 커피박 발열량, 나무껍질의 2배

영국 에너지 기업 바이오빈이 만든 커피 펠렛은 목재보다 발열량이 15% 이상 많다. 바이오빈 홈페이지 캡처
영국 에너지 기업 바이오빈이 만든 커피 펠렛은 목재보다 발열량이 15% 이상 많다. 바이오빈 홈페이지 캡처
커피박은 바이오 에너지로서의 가치도 높다. 목재나 볏짚 등 다른 바이오 에너지 원료에 비해 탄소 함량이 많아 발열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커피박의 1kg당 발열량은 5649Cal로 나무껍질(2828Cal)의 거의 2배다. 발전용 바이오 에너지로 많이 활용되는 목재 펠렛(압축 조각)의 발열량 4300Cal보다도 많다.

커피 섭취량이 많은 유럽 등에선 커피박을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과 스위스다.

영국의 바이오 에너지 기업 바이오빈은 한 해 런던에서 배출되는 커피박 20만 t 가운데 5만 t을 수거해 에너지원으로 만든다. 바이오 디젤, 에탄올, 펠렛 등 형태도 다양하다. 커피 25잔을 만들 때 나오는 커피박으로 커피숯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런던시를 중심으로 커피박을 수거하는 스타트업, 에너지 생산을 연구하는 대학 등이 친환경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커피 제조업체 네슬레는 본사가 있는 스위스에서 커피박을 펠렛 형태로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쓴다. 그룹 안에 원료 수거, 에너지 기술 연구 및 생산 조직을 따로 뒀다.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해 온 정부의 역할도 컸다. 스위스 정부는 우체국 조직을 이용해 커피박을 수거하는 등 커피박 재활용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폐기물 매립에 높은 매립세를 부과해 기업이나 개인이 자원 재활용 방안을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국내의 커피박 재활용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커피박이 자원순환기본법상 순환자원으로 분류되지 않아 사용처가 제한적이다. 만약 순환자원으로 인정되면 다른 원자재처럼 운반과 보관이 수월해진다. 정부도 커피박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오종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은 “커피박은 영양분과 수분 함유량이 많아 대량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 병충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재활용에 나서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커피찌꺼기#친환경#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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