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화재로 숨진 ‘착한 임대인’ 노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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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차량에… 잇단 희생, 안타까운 세밑
상가 2층 살던 80대 건물주 부부, 거동 불편한 상태서 불길 번진듯
“코로나 어려움에 임대료 깎아줘”… 이웃 상인들 선행 떠올리며 추모

성탄절인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상가에서 불이 나 건물 2층에 살던 80대 노부부가 숨졌다. 불이 난 건물의 주인이었던 노부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건물에 입주한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임대료를 할인해주는 등 선행을 베풀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서울 마포소방서 등에 따르면 25일 오후 1시 14분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인근의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2층에 살던 80대 부부가 숨졌다. 남편은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부인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소방 관계자는 “할아버지는 다리 한쪽이 무릎 아래로 없는 상태이고, 할머니는 거동이 약간 불편한 상태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소방은 불이 2층에서 시작돼 3층으로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 내부 마감재가 나무 재질이어서 불이 빠르게 번졌고 소방대원들이 내부에 진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건물 1층에는 식당과 카페 등이 입점해 있었지만 영업 시작 전이었고, 3층에도 입주자가 있었지만 외출한 상태여서 추가 인명 피해는 없었다. 불은 화재 발생 약 1시간 만에 진화됐다.

동아일보 기자가 화재 현장을 둘러보니 2층 흰색 외벽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그을음은 3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플라스틱 소재의 창틀은 녹아내려 아래쪽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소방당국은 경찰과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인근 상인들은 노부부를 “붙임성 좋은 이웃”이라고 기억했다. 화재 건물 인근에서 장사를 해온 A 씨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2, 3년 전부터 거동을 불편해하셨지만 꾸준히 외출하시며 이웃들과 교류하던 분들”이라며 “어르신들 사는 곳 수도관이 고장 나는 등 어려움에 처하면 주변 상인들이 선뜻 나서서 고쳐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웠다”고 했다.

A 씨는 노부부의 선행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A 씨는 “카페가 있던 자리에서 장사하던 세탁소가 코로나19 이후 사정이 어려워지자 임대료를 선뜻 깎아주시던 분들”이라며 “결국 세탁소가 문을 닫게 되자 자기 일처럼 많이 안타까워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마트 직원도 “2, 3일에 한 번씩 오셔서 1.5L 생수를 6개씩 사가시곤 했다”며 “붙임성이 좋으셔서 자녀 얘기나 날씨 얘기 등을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노부부는 더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겠다는 자녀들의 제안을 마다하고 “익숙한 동네가 좋다”며 건물에서 계속 거주했다고 한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성탄절 화재#착한 임대인#노부부 사망#마포구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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