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손효림]코로나로 돌아보는 자아와 관계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7-26 03:00수정 2021-07-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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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어떻게 그동안 너를 잃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니!”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 성인이 된 나타샤(스칼릿 조핸슨)와 재회한 과학자 멜리나(레이철 바이스)는 놀라워하며 나직하게 탄식한다. 오래전 이들이 위장 가족으로 살 때 멜리나는 나타샤의 엄마 역할을 했다. 소녀들의 뇌를 조종하고 살인 병기로 만드는 ‘레드룸’이라는 끔찍한 프로그램 속에서 지냈음에도 나타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답한다. “(어릴 적) 당신이 가르쳐 줬잖아요. 아플수록 강해지는 거라고.”

블랙 위도우는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25일 현재 관객수 240만 명을 넘기며 흥행몰이 중이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화려한 액션 그리고 자매애가 어우러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본 후 멜리나가 나타샤에게 건넨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삶에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명제지만, 코로나19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 요즘 이를 자주 곱씹어 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은 점점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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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휴가를 보내는 방식의 변화가 눈에 띈다. MZ세대 가운데는 골프, 서핑, 피트니스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중심에 두고 휴가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스포츠케이션(Sports+Vacation)’이다. 휴가 때 서울 시내 호텔에 머물며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 30대 여성은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머리를 비우고 오직 몸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운동에 몰입하다 보니 마치 명상하는 것 같았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오후 6시부터 3명 이상 모일 수 없게 되자 약속을 취소한 경우도 많지만 오랜만에 둘만의 모임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3명이 만나기로 했다가 인원을 2명으로 줄였다. 그는 “둘 다 술을 즐기지 않아 식사만 했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 술도 마시지 않고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신선했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술을 마신 것 같다”고 했다.

자연스레 관계의 깊이에 대해서도 짚어보게 된다. 발이 넓기로 유명한 한 기업인은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사이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여럿이 어울릴 수는 있지만 둘이 만나면 데면데면하고 할 말이 별로 없다면 깊이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그의 말에 공감하며 둘이서 편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꼽아봤다. 그리고 요즘, 다시 이를 떠올려 보고 있다.

코로나19는 큰 고통을 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시기가 지난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내면은 보다 단단해지길, 관계는 좀 더 깊어지길.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코로나19#블랙 위도우#혼자만의 시간#자신과 관계#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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