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어린이 게임 ‘19금’ 만든 셧다운제, 통금 풀 때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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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김재영 산업1부 차장
10년 묵은 ‘밤 12시 통금’이 드디어 풀릴까. 마이크로소프트(MS)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파장이 제법 크다. ‘강제적 셧다운제’(청소년 게임 이용시간 제한)를 이제는 진짜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MS가 자사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한국에서는 만 19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MS는 보안 문제로 계정 통합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국용 서버는 따로 구축해야 했다. 셧다운제를 적용하느라 특정 시간대에 특정 연령을 차단하는 기능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아예 성인만 가입할 수 있게 바꿔 버리겠다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는 레고 같은 블록을 쌓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공간을 꾸미는 게임이다. ‘초통령(초등학생+대통령)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가상세계 내에서 각자의 마을을 만들고 서로를 방문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현실과 혼합된 가상세계)의 원조 격으로 불린다. 지난해 청와대는 마인크래프트 게임 내에서 어린이들이 청와대를 둘러보도록 하는 이벤트를 진행할 정도였다. 그런데 졸지에 대통령이 어린이들을 ‘19금 게임’에 초대한 셈이 됐으니 모양이 말이 아니다.

셧다운제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0시∼오전 6시에 인터넷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한 제도로, 2011년 11월부터 시행됐다. 게임 과몰입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수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한국과 중국, 베트남뿐이다. 물론 중국은 좀 더 화끈하다. 부모의 신원을 도용해 게임하는 것을 막겠다며 안면인식 기술까지 도입할 정도다.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PC 게임에만 적용돼 실효성이 떨어졌다. 해외 서버나 다른 사람들의 신원을 도용해 규제를 회피하는 부작용도 계속됐다. 더구나 정부가 나서서 게임을 못 하게 막으니 게임사가 올바른 게임 사용법을 교육할 책임을 회피할 명분이 됐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규제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폐지하자는 법안이 국회 회기마다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현 국회에도 폐지 법안이 5개나 발의돼 있지만 적극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이참에 게임을 ‘악’으로 보는 다른 규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블록체인 게임에 대해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다며 게임 등급 분류를 거부하고 있다. 게임 내의 경제가 게임 밖으로 확장되고 메타버스와 가상자산이 결합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글로벌 흐름을 간과한 것이다.

2002년 그리스는 불법 도박을 근절한다는 이유로 모든 종류의 전자게임을 금지한 적이 있다. 결국 유럽연합(EU)이 그리스 정부를 유럽 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서 2년 만에 효력이 정지됐지만 그사이 그리스 내 게임산업의 기반은 뽑혀 나갔다. 그리스의 어이없는 규제는 웃음거리가 됐다. 우리의 게임 규제는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어린이 게임#셧다운제#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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