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춤 추는 김정은, 예고된 피바람이 분다 [주성하의 北카페]

주성하 기자 입력 2021-07-04 09:00수정 2021-07-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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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북한에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곡소리가 넘치고 있습니다. 올해 봄부터 제가 여러 차례 예고했던 숙청이 본격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북미 회담의 실패로 외부로 향한 북한의 문은 꽁꽁 닫혔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셀프로 내부 빗장까지 든든히 질러버렸습니다. 북한은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이 됐습니다.

김정은 역시 대외 활동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화를 벌어 주민의 인심을 살 수도 없게 됐습니다. 북한을 한 집안으로 비유하면 아래와 같은 형국입니다.

가장(家長)이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돈까지 벌어오지 못하니 집안은 먹고 살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식구들의 원망이 높아지고, 능력 없는 가장에 대한 비웃음과 무시도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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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되자 출입문에 빗장을 잠근 가장은 폭력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급기야 몽둥이를 들고 말을 듣지 않는 가족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면 다시 인자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점점 폭력의 강도만 커질 뿐이죠. 지금 김정은의 모양새가 바로 할 일이 없어지니 집안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가지도 못하게 만든 뒤 가족을 두드려 패는 데 힘을 쓰는 주폭을 닮았습니다.

이번 주 열린 북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보건, 교육, 과학기술을 담당한 정치국 위원 최상건 당 비서는 주석단에서 사라졌습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 주석단. 김정은 뒷자리에 앉았던 최상건 과학교육부장의 자리에 빈 의자만 남아있다. 정치국 위원들이 거수로 가결할 때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앞줄 동그라미)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뒷줄 동그라미)은 손을 들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들의 의결권이 사라져 해임됐음을 의미한다. 조선중앙방송 캡처


회의 전에 미리 최 비서가 앉을 의자를 뺀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 속에는 회의 초기 최 비서가 주석단에 앉아있던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텅 빈 의자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는 회의 도중 최 비서가 끌려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성택 숙청 때 그랬듯이 일단 회의에 참석시킨 뒤 모든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끌어내 숙청을 한 듯 보입니다.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2월에 정치국에서 김두일 노동당 경제부장과 박태성 노동당 선전비서가 사라진데 이어 최상건 비서도 없어졌습니다. 이중 박태성 비서는 처형됐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이 전해왔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운명도 나중에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최 비서뿐만 아니라 북한에 김정은 빼고 4명뿐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인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번에 해임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국 위원인 박정천 군 총참모장과 함께 말입니다. 해임 후 어떤 조치가 따를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덕훈 총리 또한 이번 확대회의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최근 경제난에 따른 책임 추궁을 당해 실각 가능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은 “경제 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이번 숙청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인물들은 워낙 고위급이라 외부에서 알 수 있지만, 알려지지 않고 숙청된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한때 내로라하던 간부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른 간부들도 언제 자기 순서가 다가올지 몰라 오금이 저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김정은은 리병철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의 경질 배경에 대해 “책임 간부들이 세계적 보건 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 대책을 세우는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태업)함으로써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켰다”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군부 서열 1, 2위의 간부가 뜬금없이 코로나 방역 지침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아 군량미와 관련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6월 중순 특별명령으로 군량미를 풀어 식량난을 겪는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아마 “군량미 몇 십만 톤이 있으니 이걸 풀어 평양시민들 석 달 배급은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는 식의 계산이 섰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 군량미 창고에 서류에 기록된 것만큼 식량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북한은 늘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와 실제 현장이 다릅니다. 사실대로 보고했다가 김정은이 격노하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야 “당장 채우라”고 지시하면 그만이지만, 자기도 채울 능력이 없는데 아래 간부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못 채우면 당의 지시를 집행하지 않았다고 또 숙청됩니다. 그러니 허위 보고가 난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위 보고는 평소에는 들키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직접 모든 군량미 창고를 다 가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김정은이 군량미로 어디에, 언제까지 배급을 주라고 지시를 하면 사정이 다릅니다. 솔직히 말해도 처벌되고, 배급을 못줘도 처벌됩니다. 이 때문에 군 간부들이 부족한 군량미를 메우기 위해 김정은 몰래 외국에서 식량을 밀수하다 들켰다는 이야기가 북한에 퍼지고 있습니다.

뒤늦게 군량미 창고에 식량이 충분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은도 배급을 주겠다고 약속한 자기 체면이 땅바닥에 구겨 박혔다고 생각해 분노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선포한 비상방역 규정을 깨고 식량을 수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군 고위 간부 두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민심을 달래려한 듯 보입니다. “나는 군량미까지 풀려고 했는데, 거짓말하는 나쁜 간부들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을 뿐 내 잘못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대체로 무능한 가장은 자기 책임은 전혀 없고, 가족이 굶주리는 이유를 아내가 살림을 잘못해서, 평소에 축적을 못해서, 장성한 아들이 게을러서 이런 식으로 돌립니다. 불평이라도 했다가는 몽둥이가 날아와 죽을 수도 있으니 식구들은 말도 못합니다. 그리고 집안의 군기를 잡기 위해 대개 자식보단 먼저 서열이 위인 아내부터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향해 “너희가 배고픈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잘못했기 때문이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딱 그 식입니다. 자기 잘못을 숙청을 통해 고위 간부들에게 전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올해 간부들을 숙청하겠다고 한 것은 이미 예고된 순서입니다. 그 진행 단계는 이렇습니다.

올해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를 시작으로 이어진 많은 회의에서 김정은은 국가 경제에 피해를 주고, 딴 주머니를 챙기려는 간부를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으로 엄중시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심지어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조장시키는 대상들을 일꾼(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하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김정은이 말한 제거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29일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간부들을 질타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 캡처


이렇게 4월까지 거친 말들을 써가며 경고한 뒤 봄에 전국에서 자수 바람이 불었습니다.

“과거 잘못한 것을 솔직히 고백하면 용서하고, 숨겼다 나중에 들키면 죽인다”는 겁니다. 문을 닫아 감옥처럼 변한 북한에서 전 국민을 ‘죄수의 딜레마’에 몰아넣은 겁니다.

경고와 자수 단계를 거쳐 6월말부터 예고된 숙청이 본격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제일 고위 간부들부터 경질됐는데, 이는 “이 정도 거물들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면 아래 간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피바람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숙청이 중앙 간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간부들이 까딱 잘못하면 죽게 생겼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정은에게 자기는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목숨 건 간부들은 눈이 뒤집혔습니다. 이번엔 고위 간부들이 아래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리 기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새 북한 내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합니다. 평양에서도 밤을 자고 나면 사람들이 잡혀가 살벌한 공포가 온 도시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신의주, 혜산, 회령 등 국경도시들은 더 많이 잡혀갑니다. 주요 도시들도 사람들 잡아가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반사회주의 및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뿌리 뽑으라고 했으니 간부들은 실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신의주 시당 책임비서가 김정은에게 “장군님 말씀에 따라 강한 투쟁을 벌여 우리 도시에선 반사회주의 반동분자 100명을 제거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혜산 시당 책임비서는 “우리는 더 열심히 투쟁해 200명을 숙청했습니다”고 보고하는 식입니다.

이런 숙청은 충성 경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정의 칼날을 잡은 간부들에겐 “내가 죽거나 너(인민)가 죽거나”의 목숨 건 싸움인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결국 죽어나갈 것은 인민들 밖에 없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저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끔찍할 따름입니다.

물가는 정신없이 오르고, 식량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잔인한 숙청까지 시작되니 북한 주민들 속에선 지금 “김정은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한 명 때문에 지금 북한 전국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아우성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김정은에겐 위안이 될 일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7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제주포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을 겸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정은이 무슨 짓을 하던 한결같이 칭송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역시 나의 강한 결단력과 리더십,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꺼내드는 숙청이라는 경영방식은 밖에서도 인정해준다. 역시 나는 뛰어난 지도자가 분명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김정은이 그런 자기 최면까지 걸리게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피 비린내가 진동하게 될까요.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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