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준치는 준치가 아니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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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바다는 넓고 물고기 종류는 많다. 먹어보면 앎이 깊어진다는 믿음으로 식사든 안주든 대체로 해산물을 시킨다. 제주도로 생활 근거지를 옮긴 지 한 달쯤 됐을 때다. 안주를 시키기 위해 차림표를 펼치자 준치가 눈에 들어왔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으니 먹어보자며 친구에게 동의를 구했다. 준치에 대해 한껏 아는 척하고 있는데 반건조 오징어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놀란 눈으로 주인장께 준치를 주문했다고 말하니 앞에 놓인 게 준치란다. 준치가 반건조 오징어라니? 한바탕 웃음으로 당황스러움을 겨우 수습했다.

제주 해안 길 곳곳에서 오징어 건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즉석에서 구워내는 반건조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며 색다른 경험을 한다. 오징어 잡는 철이 아님에도 건조하는 곳이 많아서 의아했지만 예사롭게 지나쳤다. 올레길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광 상품의 일환으로 생긴 게 아닐까 추측만 했다. 며칠 전 해안 길을 걷다가 궁금증을 풀 겸 반건조 오징어와 맥주를 시켰다. 석쇠에 오징어를 굽는 주인장께 몇 가지를 물었다. 원양어선에서 대량으로 잡은 냉동 오징어를 건조한단다. 맛과 크기가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 정도라 하여 ‘중치’라 부르다가 ‘준치’로 바뀌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부터 해풍에 말려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구워서 팔았는데 요즘은 제주도 특산품이 됐다.

옆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의 대화가 들렸다. “제주도에서 잡히는 싱싱한 한치를 건조해서 더 맛있다”는 연인 간 대화였다. 한동안 유심히 살폈더니 준치를 한치로 알고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껍질을 벗겨서 말리기 때문에 한치처럼 보였을 터. 오징어와 달리 한치는 다리 길이가 한 치 정도로 짧다고 하여 붙여진 속명이다. 많은 관광객은 껍질 벗긴 오징어와 한치를 구별하지 못했다. 제주시 한경면 자구내 포구 등 서쪽 해안은 한치와 준치를 말리고, 동북쪽 성산읍과 구좌읍 해안도로에서는 주로 준치를 건조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준치를 검색해 봤더니 주인장 말이 옳았다. 원양어선이 1980년대 중반부터 포클랜드 제도와 인근 공해인 남서 대서양에서 잡은 ‘아르헨티나짧은지느러미오징어(학명 Illex argentinus)’였다. 흔히 일렉스오징어로 통용된다. 이를 제주도에서 해풍으로 건조해 준치라 부른다. 동해에서 살오징어를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잡는데 일렉스오징어는 2월부터 6월까지 어획한다. 연근해산 오징어 공급이 감소하는 시기에 수급돼 가격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렉스오징어는 국내 원양산 오징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동해의 살오징어, 서해의 참갑오징어 외에도 무늬오징어라 불리는 흰꼴뚜기, 동해산 한치인 화살꼴뚜기, 제주도 한치로 알려진 창꼴뚜기 등이 우리 바다에 서식한다. 요즘 한치잡이로 불야성이다. 주광성인 한치를 유혹하려는 집어등은 가깝고도 아득한 불빛으로 제주의 밤을 둘러싸고 있다. 오징어는 개떡, 한치는 인절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주민은 한치에 애정이 깊다. 지금은 준치 인기가 치솟고 있어 개떡에서 백설기 정도로 오징어 위상이 높아진 듯하다. 한치물회와 한치회가 제철이고, 해풍에 말린 준치까지 더해 입이 즐거운 제주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준치#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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