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손효림]일상에서 재능 나누는 이들, 베풀 것 찾아보게 만들어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6-14 03:00수정 2021-06-14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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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집 ‘다보탑을 줍다’로 유명한 유안진 시인(80)은 요즘 작은 시 교실을 열고 있다. 학생들은 은행을 다니다가 은퇴한 이 등 3명. 코로나19로 카페에서 5명 이상 모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강료는 돌아가면서 찻값 내기. 그 이상 뭔가 하는 건 절대 금지다. 유 시인이 시를 가르치게 된 건 신부님의 아이디어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유 시인이 신부님에게 물었다.

“저는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 줄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신부님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답했다.

“클라라 자매님, 시를 가르쳐 주시면 어떨까요? 은퇴하신 분 중에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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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 교실이 꾸려졌다. 수강생은 시를 쓴 후 4장씩 출력해 온다. 이름은 쓰지 않는다. 유 시인과 수강생들은 누가 쓴 건지 모른 채 시를 읽은 후 돌아가며 감상을 이야기한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서로 민망하지 않게 배려한 방식이다. 유 시인은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분들이어서 그런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를 쓴다”며 “때로 낯설기도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 신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내게도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덧붙였다.

강렬한 색상에 거친 듯 힘 있는 붓질로 동물, 풍경을 담는 사석원 화가(61)는 푸르메재단에 매년 작품을 기부하기로 했다. 앞서 그는 2016년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회화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 ‘동물들의 합창’을 전달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무작정 찾아와 “아이들이 병원에 오는 걸 무서워한다.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게 시작이었다.

실제 긴장한 채 병원에 온 아이들은 호랑이 소 돼지 등을 유쾌하게 그린 ‘동물들의 합창’을 보면 얼굴이 밝아진다고 한다. 사 작가는 지난해 ‘노래하는 호랑이’ 회화와 동명의 조형물도 푸르메재단에 각각 1점씩 전달했다. 그가 해마다 기부하는 작품들은 장애어린이 재활 치료와 장애청년 자립 사업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시인과 사 작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누군가는 빼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나눌 수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작은 능력을 자신에게서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나서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실천하려는 의지다. 유 시인과 사 작가를 보며 생각한다. 이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덜 팍팍해지는 게 아닐까. 기자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유안진 시인#지란지교를 꿈꾸며#다보탑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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