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아시아 허브’ 홍콩… 글로벌 기업 속속 이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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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이 장악… 모든 것이 통제될 것”
루이뷔통, 로레알, 소니 등 엑소더스… 홍콩주재 美기업 42% “이주 검토” 싱가포르-상하이 등 경쟁 지역으로… 사무실 공실률 15년 만에 최고치
中 본토기업이 대체… 63곳 홍콩 이주

홍콩의 거리. 사진 뉴스1
홍콩의 거리. 사진 뉴스1
세계 최대 명품업체인 프랑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프랑스 화장품기업 로레알, 일본 소니 등 각국의 간판 대기업들이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곳이자 ‘아시아의 허브(hub·중심지)’로 불렸던 홍콩을 속속 떠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보도했다. 날로 강화되는 중국 개입과 이로 인한 불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등이 겹친 결과라고 진단했다.

노스페이스, 반스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VF코퍼레이션은 올해 1월 25년간 운영했던 홍콩 사무소를 폐쇄했다. 그간 홍콩에서 중국 영업 및 마케팅을 담당했던 인력은 중국 상하이로 이동시켰다. 최근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또한 경영진 일부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보냈다. LVMH와 로레알도 홍콩 직원을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한국 네이버는 고객 개인정보 등 백업 데이터를 보관하는 국가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바꿨다. 미국 페이스북과 구글 역시 미국과 홍콩을 해저 데이터 케이블로 연결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세계적 유명 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는 중국 본토 기업이 속속 채우고 있다. 최근 12개월간 중국 기업 63곳이 홍콩에 새 본사와 사무실을 열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 45곳은 홍콩 사무소 및 지역 본사를 폐쇄했다. WSJ는 최근 홍콩의 업무용 사무실 공실률(비어 있는 비율)이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이 중 80% 이상이 글로벌 기업이 홍콩을 떠나며 발생한 공실이라고 전했다.

홍콩 내에서는 홍콩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대규모 반중 시위로 번진 2019년부터 홍콩 사무소를 닫거나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올해 홍콩 선거제 개편 등이 잇따라 실시되면서 중국의 개입을 우려하는 시선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홍콩 주재 미국상공회의소의 지난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25명 중 42%는 “국가보안법 우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주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지난해 홍콩 인구는 2019년보다 4만6500명 줄었다.

15년 전 직물 사업을 하기 위해 홍콩으로 이주했던 호주인 샌드라 보치 씨는 1월 홍콩을 떠났다. 그는 “홍콩보안법은 중국이 홍콩을 장악했다는 분명한 신호”라며 “모든 것이 통제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1980년대에 홍콩으로 이주한 미국인 사업가 롭 치프먼 씨 역시 “30년간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까지 낳았지만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영국에 ‘향후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통해 홍콩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후 홍콩에 대한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영국은 홍콩 시민의 자국 이주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영국은 반환 이전에 영국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이 영국에 영구 정착할 수 있도록 했다. WSJ는 홍콩 전체 인구의 약 4%에 해당하는 30만 명 이상이 향후 5년에 걸쳐 영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추정했다. WSJ는 “1997년의 홍콩은 영국식 사법 체계를 갖춘 ‘열린 사회’였지만 현재의 홍콩은 폐쇄적이며 중국 경제에 종속됐다”고 지적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아시아 허브#홍콩#홍콩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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