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키우면 정부 지원금, 산에서 키우면 ‘직불제’ 소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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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답을 찾다- 시즌2]〈2〉한국형 산림뉴딜, K-포레스트

경사지 숲속에서 재배 중인 표고버섯. 산림청 제공
경사지 숲속에서 재배 중인 표고버섯. 산림청 제공
“논밭농사는 해마다 수확하지만 옻 수확에는 7년 이상 걸립니다. 산과 나무의 가치 하나만 보고 일해 왔는데 정부 지원은 너무 부족합니다.”

서동진 충남임업후계자협회장(59)은 정부 지원의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 회장은 2014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 있는 산을 사들여 7만9200m²(약 2만4000평)에 옻나무 5만 그루를 심었다.

하지만 임업인으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옻 수확을 위해 산자락에서부터 정상까지 작업로를 내야 했는데 허가 절차가 만만치 않았다. 산지임시사용허가를 받으려고 800만 원의 설계비도 부담해야 했다. 서 씨는 옻 발효액을 만드는 한 영농조합법인에 옻을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임업인으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답답해했다.

전남 해남군 임야에서 친환경 도라지를 재배 생산하는 이상귀 씨(51)는 정부에 배신감마저 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산에서 도라지를 키우면 임업인이고 논에서 도라지를 키우면 농민이죠. 그런데 농민에게 직불제가 적용되고 임업인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중국산이 밀려오고 논밭에 기계화로 도라지를 키우는 이웃과 비교하면 경쟁력도 없고 소득도 턱없이 낮습니다.”

○임업직불제 도입 시급

임업의 생산기반은 농축수산업에 비해 상당히 열악하다. 하지만 임업인들은 ‘정부가 공익적 가치 실현만을 강요해왔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임업인들은 하나같이 ‘농업직불제’와 ‘수산업직불제’처럼 임업직불제를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정희 한국산림경영인협회장은 “재배조건이 농지에 비해 불리하고 각종 규제로 재산권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는 임업인을 위해 직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001년 도입된 농업직불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고려해 정부가 농민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부터는 농업의 공익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공익직접지불제로 개편됐다. 올해만 120만 농가에 2조3919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어업분야도 2015년 수산업직불제가 도입됐다.

구독자가 11만 명인 유튜브 ‘열무TV’ 운영자 최무열 한국임업인후계자협회장은 방송에서 “그동안 217만 명에 이르는 산주와 임업인은 직불제도에서 소외돼 왔다”며 “산림의 공익적 혜택 반대편에 있는 임업인이 수많은 피해를 입어온 만큼 산림의 지속적 가치 유지를 위해 직불제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임업직불제는 2017년부터 국회에서 발의와 계류, 폐기를 반복해오다 정진석 서삼석 윤재갑 의원의 발의로 현재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산림청은 올해 법안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익적 가치 1인당 428만 원

임업은 생물다양성, 지구온난화 방지 등 농축수산업보다 훨씬 많은 공익기능을 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8년 기준으로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연간 221조 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국민 한 사람이 해마다 428만 원의 혜택을 받는 셈이다.

과거 산림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휴식과 치유를 위해서 찾는 공간으로 확장돼 ‘삶터이면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나무심기, 숲 가꾸기 등 전통임업분야가 산림 일자리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일자리는 물론 목재, 도시 숲, 정원, 산림복지, 산림휴양 등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나무의사와 목재교육전문가, 산림레포츠지도사 등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도 생겼다.

산림분야 창업아이디어를 산림비즈니스로 구체화해 모의창업을 시도하고 창업가능성 검증과 창업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산림청과 산림조합 등에서는 ‘내 산으로 임업인이 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임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임업인인 독림가와 임업후계자도 육성하고 있다. 특히 산림과 청정임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임업인 선발 인원도 2016년 1353명에서 2018년 2314명, 지난해에는 2723명으로 해마다 늘어 지금까지 선발된 전문임업인은 1만9074명에 달한다.

산림청은 임업인 증가 추세에 맞춰 융자, 세제감면, 임산물의 생산·가공·유통·판매 단계별 지원 등 다양한 정책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림일자리발전소는 중앙부처에서 유일한 조직으로 산림자원을 활용하는 산림비즈니스를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운영할 주민사업체를 발굴 육성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산림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산림#공익가치#임업직불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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