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석달간 부실대응 ‘女부사관 죽음 방치’ 비판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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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공군 女부사관 끝내 극단 선택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2021.06.01. [서울=뉴시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2021.06.01. [서울=뉴시스]
공군의 여성 부사관이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회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군 당국이 뒤늦게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2030세대의 공분이 일자 여론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여권도 일제히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부실 급식 논란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군이 성추행 사건 발생 이후 석 달 동안 후진적인 대응으로 사실상 피해자의 죽음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 가해자, 사건 발생 2주 뒤에야 부대 옮겨
국방부는 1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안의 엄중성을 고려해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상관의 합의 종용 등 추가적인 2차 피해에 대해 군 검경 합동수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철저히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군 내 회식 금지령이 내려졌던 3월 2일 충남 서산 20전투비행단에 근무하던 A 중사는 상관이 주관한 회식 자리에 불려 나간 뒤 귀가하는 차량 뒷좌석에서 B 중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두 달여 뒤인 지난달 22일 A 중사는 부대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21일 극단적 선택을 한 A 중사는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겼고 휴대전화엔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는 글들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은 사건 다음 날 A 중사의 신고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B 중사가 5전투비행단으로 근무지를 옮긴 건 사건 발생 뒤 15일이 지난 3월 17일이 되어서였다. 유족은 신고 뒤에도 “살면서 한번 겪을 수 있는 일” “없던 일로 해달라” 등 가해자와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가 있었다고 했다. 같은 부대 소속인 A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회유를 했다고 한다. A 중사의 유족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도 A 중사가 다른 부대에서 파견 온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당시에도 직속상관으로부터 합의를 종용당했다고 밝혔다.

결국 사건 발생 이틀 뒤 두 달여간 청원휴가를 나간 A 중사는 3월 중순 15전투비행단으로 부대 변경을 신청했고 지난달 초에야 부대를 옮겼다. 1일 국방부에 진정을 제기한 군인권센터는 “회식을 함께한 상급자가 가해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부대 분위기가 가해자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피해자가 낯선 부대로 쫓겨가듯 떠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건 발생 다음 날 A 중사가 피해 사실을 선임 부사관에게 알렸지만 부대 대대장(중령)에게 즉각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전투비행단장(준장)은 신고 하루 뒤에야 사건을 인지했다고 한다. 합동수사 TF는 처음 신고를 받은 부사관 등이 지연 보고를 한 경위도 수사 중이다. 군 경찰은 4월 초에야 B 중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 2030 공분 일자 여권 일제히 “엄정 수사 촉구”
유족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랑하는 제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려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 달라”고 했다. 이 청원은 게시 하루 만인 1일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서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여성가족부는 군대 내의 성폭력 사건을 현장 점검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장례식장을 찾았으나 A 중사 아버지는 늑장 대응 등을 문제 삼아 면담을 거부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강성휘·김소영 기자
#성추행#죽음 방치#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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