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상준]백악관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민감한 질문’이 시작됐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입력 2021-05-19 03:00수정 2021-05-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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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정치부 차장
“한미 정상 간 대화는 시종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뤄졌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현안이 건설적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양국 합의에 따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힐 수 없다.”

2017년 6월 2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간 만찬이 끝난 뒤 청와대는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만찬은 오후 6시부터 90분간 예정되어 있었지만, 예정 시간을 넘겨 오후 7시 50분 무렵까지 진행됐다. 파격은 더 있었다. 만찬장을 떠나려는 문 대통령 내외에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내 사적인 공간을 한번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백악관 3층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했고, 한미 정상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트럼프의 ‘진짜 질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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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공짜로 주한미군이 주둔 중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인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3층에 도착해서도 트럼프는 연달아 10개 가까운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같이 민감한 현안들이었다. 외교·안보 라인의 한 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아찔했다”고 회상했다. 뒤늦게 질문을 전해 들은 청와대 참모들도 “공식 정상회담을 하기도 전부터 정말 고약한 질문만 골라서 했다”며 놀랐다. 차마 이 대화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 없었던 청와대는 온갖 외교적 수사(修辭)를 짜내 “솔직하고 진지하게 여러 현안을 건설적으로 논의”라는 언론 발표용 문구를 썼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지금, 문 대통령은 또 한 번의 백악관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한미 정상이 나섰던 북핵 협상은 제자리걸음만 계속한 반면에 백악관의 주인은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한미 양국을 둘러싼 주요 이슈도 확 달라졌다. 백신과 반도체는 이제 한미는 물론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가 됐다. 회담장을 채운 양국 취재진이 퇴장하고 난 뒤 바이든 대통령이 쿼드(Quad), 북한 인권 문제, 한일 갈등, 대(對)중국 정책 등을 ‘진짜 질문’으로 던질 가능성이 크다.

초면에 문 대통령에게 곤란한 질문을 쏟아냈던 트럼프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뀐 것은 2017년 11월 방한 때부터였다. 그 사이 한미 정상은 뉴욕에서도 만났고, 여러 차례 통화했다. 청와대는 백악관을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갖고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백신과 반도체, 그리고 배터리 등은 미래가 아닌 지금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외교적 수사로 점철된 보도자료가 아닌, 명확한 합의 내용이 담긴 발표문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우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는 낙관적인 마음만을 안고 워싱턴행 공군 1호기를 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백악관#엘리베이터#한미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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