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맞은 美 ‘실내 노마스크’… “성급” “정치적 판단” 논란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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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필요”→“실내 노마스크 허용”… CDC국장 이틀새 말바꿔 잡음
바이든, 당일 보고받고 서둘러 연설… 22개주는 아직 마스크 착용 의무화
CDC “정치적 결정 아냐” 4번 해명… 일부선 “주유대란 등 악재 전환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발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방역을 위한 경계심을 허무는 성급한 판단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번 발표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보건당국의 이번 발표가 인플레이션 공포로 시장이 요동치는 와중에 나왔다는 점 등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득을 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은 16일(현지 시간) 하루에만 언론사 4곳과 인터뷰를 갖고 해명에 나섰다. 월렌스키 국장은 이날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관련 질문을 받고 “이번 결정은 정치적 압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과학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며 백신 접종이 확대되고 확진 사례가 줄어드는 상황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NBC와의 인터뷰에서는 “모두에게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허가를 준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과학에 근거해 각자의 위험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 연방정부의 마스크 착용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월렌스키 국장의 말이 불과 이틀 만에 달라진 점도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는 11일 의회에서 마스크를 벗는 시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직 국민 3분의 1만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지역사회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조치를 유지할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그런데 이틀 뒤인 13일 CDC는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한 ‘실내 노 마스크’ 허용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발표 당시 월렌스키 국장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은 팬데믹으로 중단했던 활동들을 재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틀 사이에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CDC의 가이드라인이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WP에 따르면 월렌스키 국장은 10일 밤 이미 마스크 착용 지침을 대폭 완화하는 새 가이드라인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에게는 이틀 뒤이자 공식 발표 전날인 12일 오후 6시에 알렸고, 이것이 백악관 참모들에게 전달된 것은 오후 9시나 돼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발표 당일 아침에 보고를 받았다. 당일 오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예정에 없이 부랴부랴 잡혔다. 일부 주지사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CDC의 새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관련 규정들을 바꿔야 하는 것에 난감해했다. 22개 주는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 잡음이 되레 CDC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CDC에 수차례 외압을 행사했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현재는 백악관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CDC의 결정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취지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CDC의 이번 발표로 문제가 되는 다른 현안들을 덮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WP는 “월렌스키 국장이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내린 결정은 바이든 반대파에게 정치적 구실을 줬다”며 “이들은 많은 미국인이 주유소에 줄을 서고, 중동 긴장 고조, 인플레이션 공포로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런 발표가 나와 바이든 대통령이 이득을 봤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해킹 피해에 따른 동부 지역의 주유 대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잇달아 제기되는 시점에 마스크 착용 지침 완화 결정을 갑자기 내놓음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CDC의 ‘실내 노 마스크’ 허용 지침 발표를 두고 전미간호사노조가 성명을 통해 “환자, 간호사, 근로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등 팬데믹 상황에서 섣부른 조치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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