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MZ세대 사로잡은 윤여정의 ‘힙한 매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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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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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끊기고/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라네’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의 나이 78세에 쓴 시입니다. 소설가 박경리는 68세에 이르러 대하소설 ‘토지’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헤밍웨이는 53세에 ‘노인과 바다’를 썼고,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70세에 ‘부활’을 남겼습니다. 독일의 극작가 괴테는 82세에 평생의 역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연륜이 쌓이면 묵은 장맛처럼 내공과 혜안이 우러나는 모양입니다.

74세의 배우 윤여정(사진)이 제93회 아카데미상(일명 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 과정을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 돋보이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 못지않게 윤여정의 입담이 화제입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윤여정의 매력에 스며든다’라는 뜻의 ‘윤며들다’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기성세대의 훈수를 ‘꼰대’의 잔소리쯤으로 받아치던 젊은이들이 나이 든 누군가를 닮고 싶다니 신선합니다.

윤여정은 검정과 흰색이 어울린 패션을 좋아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습니다.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세련미가 넘칩니다. 윤여정의 말에는 가식이 없으며 솔직 담백합니다. 직설적 표현 속에 재치와 유머가 배어 있습니다.

“유럽 애들은 뭐 정정이 윤정이 막 부르더라. 얘, 오늘은 다 용서해줄게”처럼 ‘얘’로 시작하는 특유의 소탈한 말투는 ‘휴먼 여정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는 ‘라떼는 말이야’ 대신 “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합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지금이 최고의 순간 아니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답해 경쟁에 지친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맡았는데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가. 우리는 각자의 영화에서 최고였다. 내가 운이 더 좋았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후보자들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말에서 품격이 느껴집니다.

미나리의 제작자 브래드 피트의 호명으로 시상대에 오른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드디어 만나게 됐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계셨나”라고 농담을 건네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앞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자리에서 윤여정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이 좋은 배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 있고 영광이다”라고 톡 쏘는 듯한 위트를 던졌습니다.

인터넷에는 ‘세상 힙하고 쿨한 힙머니(힙+할머니)’란 찬사가 나돕니다. 자존감 넘치는 세련된 매너와 유머 감각, 당당하고 솔직한 표현 등이 나이를 넘어 소통하는 비결인 듯합니다. 74세의 배우 윤여정을 보며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라고 읊은 사무엘 울만의 시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신문과 놀자#mz세대#윤여정#힙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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