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대한민국엔 ‘화이자’가 없다

박용 경제부장 입력 2021-05-05 03:00수정 2021-05-0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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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초단기 개발한 화이자의 혁신
국가 경영에 민간의 창의와 혁신 수혈해야
박용 경제부장
미국의 힘을 짧은 시간에 느끼려면 뉴욕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42번가를 따라 걸어 보라고 한다. 18세기 옥수수 밭이던 동쪽 끝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축인 유엔 본부가 들어섰다. 서쪽으로 더 가면 20세기 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마천루 시대를 상징하는 크라이슬러 빌딩, 세계 최대의 철도역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지식강국의 저력이 녹아 있는 뉴욕공공도서관, 뮤지컬 등 문화산업 거점 타임스스퀘어와 극장지구로 이어진다. 서쪽 끝 허드슨강변엔 미 국방력의 상징인 항공모함과 전투기, 우주기술의 결정체인 우주왕복선이 전시된 해양항공우주박물관(46번가)이 있다. 길 하나에서 세계를 수호하는 유엔, 지식을 지키는 도서관, 미국을 보호하는 항공모함,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우주왕복선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뉴욕 42번가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미국의 대표 제약사 화이자 본사도 이 길에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자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접종까지 성공한 그 회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치료제, 백신 개발만큼은 끝을 보라”고 당부하고, 우리 정부가 지원을 위한 범정부위원회까지 만들어도 안 된 일을 그들은 해냈다.

어떻게 했을까. 알베르트 부를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에서 비결을 소개했다. 화이자는 지난해 3월 ‘메신저RNA(mRNA)’ 기술을 보유한 독일의 바이오엔테크와 손을 잡았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를 합성하는 백신 신기술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개발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또 백신 후보 물질을 차례차례 테스트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여러 후보를 동시에 연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돈은 훨씬 더 들어도 시간은 아낄 수 있었다.

수조 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일인데도 미국과 독일 정부의 지원은 거절했다. 부를라 CEO는 “과학자들이 재무적 걱정을 하지 않게 해줬고 과도한 관료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했다. 정부 돈을 받지 않아 보고나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미 정부는 대신 최대 3년이 걸리는 임상 2상과 최대 4년이 걸리는 3상을 동시에 진행하게 해달라는 화이자의 요청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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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그랬을까. 돈 때문만은 아니다. 부를라 CEO는 “민간 부문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정부와 공공 부문에 의존하는 우리에겐 생소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1962년 ‘대기업과 국가적 책임’ 논문에서 “대기업이 기술 혁신이나 사업 방식의 혁신에 더해 국가 정책의 혁신을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엔 경영전략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가 민간 기업의 창의적 혁신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도 성장하는 ‘공유가치 창출(CSV)’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당장 접종할 백신이 모자란 것도 문제지만 대대적인 투자와 혁신으로 사회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는 화이자와 같은 대기업을 키우고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게 더 아쉽다. 민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국가 경영에 접목하고 그들을 국가 리더십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인식 전환과 사회적 합의 없이 미래 경쟁력은커녕 시민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42번가의 기적’을 만든 화이자가 그 길을 보여준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코로나#백신#화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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