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檢에 수사 넘겨도 기소는 못 맡겨’ 초법적 공수처 사무규칙

동아일보 입력 2021-05-05 00:00수정 2021-05-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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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정부청사에 위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2021.3.29/뉴스1 © News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을 제정해 어제 공포했다. 이른바 ‘공소권 유보부 이첩’도 사무규칙에 포함됐다. 판검사 및 경무관급 이상 고위 경찰관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에 이첩하더라도 수사가 끝나면 사건을 다시 공수처에서 넘겨받아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내용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이지만 예외적으로 판검사와 고위 경찰관에 대해선 기소권까지 갖고 있다.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장의 판단으로 판검사 등에 대한 수사를 검경에 이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수사가 완료된 이후의 절차는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공수처가 3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의혹 관련 사건을 검찰에 이첩하면서 ‘수사 완료 뒤 재이첩’을 요구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도 공수처가 이를 아예 내부 규칙에 넣어 못 박은 것은 초법적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수처가 굳이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하겠다면 공수처법을 개정하는 게 원칙이다. 각 기관이 제정한 규칙의 효력은 해당 기관 내부로 한정되고 다른 기관에는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검경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을 공수처 규칙에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 더욱이 검찰은 해당 조항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공수처는 “검경과 협의했다”며 규칙 제정을 강행했다. 공수처가 검경의 상위기관 노릇을 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공수처는 현재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검사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수사 대상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포함한 6부 요인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3급 이상 등 7000여 명에 달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들 공직자의 범죄를 찾아내 수사하는 것만도 출범한지 갓 100일을 넘긴 공수처에는 벅찬 일이다. 아직 1호 수사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이다. 논란을 자초하는 내부 규칙에 집착하기보다는 수사 역량을 키우는 게 지금 공수처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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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사건사무규칙#공소권유보부이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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