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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킴 카다시안 트랜스젠더 父의 주지사 도전…당선 가능성은?[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입력 2021-04-27 14:00업데이트 2021-04-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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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연예인의 정계 진출이 매우 드문데요, 우리 나라는 선거 때마다 연예인들이 정계 러브 콜을 받고 ‘금배지’를 다는 성공 사례가 꽤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워싱턴행이 가뭄에 콩 나듯 이뤄집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서 연예인은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럼없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고, 대중도 그런 소신파 연예인을 좋아하니까 굳이 정치에 뛰어들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민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케이틀린 제너(72)가 눈길을 끕니다. 그녀는 최근 트위터에 주지사 출마신청서 사본과 함께 “출마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적극 후원해주세요”라고 올렸습니다. 제너는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 출신으로 4년 전 성전환 수술을 해 남성에서 여성이 된 인물입니다.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셀러브리티 킴 카다시안의 어머니 크리스 제너와 결혼했다가 2015년 여성 선언과 함께 이혼했죠. 원래 이름은 브루스 제너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육상·10종 경기 금메달리스트 시절의 브루스 제너(왼쪽). 자신을 여성이라고 선언한 후 “케이틀린이라고 불러줘요”라는 제목으로 시사 잡지 베니티페어의 표지를 장식한 제너. 베니티페어
화제성으로 본다면 제너의 출마는 2003년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후 가장 주목을 받습니다. 슈왈제네거가 출마했던 곳 역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습니다. 슈왈제네거는 유럽 이민자, 제너는 성적 소수자( LGBT)라는 ‘소수그룹’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주당 주지사가 무능 논란으로 탄핵 대상이 되면서 그 후임 자리에 도전하는 공화당 출마자라는 것도 겹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접점은 여기까지. 슈왈제네거 출마 때부터 ‘거버네이터’<거버너(주지사)와 터미네이터의 합성어>로 불리며 높은 당선 가능성이 점쳐졌던 것과는 달리 제너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흥행 요소는 될 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성이 된 후 카다시안 가족과 행사에 참석한 케이틀린 제너. 왼쪽부터 아내였다가 이혼한 크리스 제너, 의붓딸 클로이 카다시안, 크리스와의 사이에 낳은 친딸 켄달 제너, 의붓딸 코트니, 킴, 케이틀린, 친딸 카일. 피플
왜 슈왈제네거는 되고, 제너는 안 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슈왈제네거는 준비된 후보였고, 제너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슈왈제네거는 촌스러운 영어 사투리를 구사하는 ‘무식한 근육남’ 이미지가 강했지만 정계 진출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고, 그런 포부를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케네디 가문 출신의 방송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데 성공했죠. 보디 빌딩 ‘미스터 올림피아’ 7회 우승이라는 유명세를 적극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함도 가졌습니다. ‘터미네이터’ 이후 인기가 절정이던 시절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조직했던 스포츠건강영양위원회(PCSPF)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PCSPF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진 유서 깊은 대통령 직속 생활체육 장려 기관입니다. 이후 부시 대통령과 미국 전역을 돌며 건강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장모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여동생인 유니스 슈라이버가 조직위원장으로 있던 장애인 스페셜올림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방과후 체육활동 기금 조성을 위한 ‘제안49호’의 발의자로 나서기도 했죠. 물론 케네디가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지만 발로 뛰면서 캘리포니아 지역 정치에 터를 닦은 것이죠.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스포츠건강영양위원회(PCSPF) 위원장에 임명된 후 대통령과 함께 건강 운동 캠페인을 벌이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들은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서 함께 눈썰매를 타며 ‘브로맨스’를 과시하기도 했다. 휴스턴 크로니클·위키피디아
반면 제너는 너무 조용합니다. 처음 자신을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이라고 공개했던 2015년 무렵 LGBT 운동의 지도자, 또는 얼굴 마담 정도는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후 뚜렷한 공개 활동이 없습니다.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치자금 후원 실적도 없고 모금 활동을 벌인 적도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정치에 얼굴을 알릴 수 있도록 어젠다를 제시한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 자질뿐 아니라 정치 환경도 다릅니다. 슈왈제네거가 대단했던 것은 민주당 출신 주지사만을 줄줄이 배출해온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해 당선됐기 때문이었습니다. 2003년 그가 출마를 선언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훌륭한 주지사감”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9·11 테러 이후 정점을 찍었던 때였죠. 인기 있는 공화당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출마한 덕분에 슈왈제네거의 당선 가능성은 높았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면 이를 가는 캘리포니아에서 제너는 “트럼프 지지자이며 지난 대선 때 그를 찍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서 몇몇 유명 선거 전략가를 모셔오기까지 했으니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그를 차갑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화당에서 제너만 출마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월 내지 11월로 예정된 선거에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후보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너를 비롯한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이번 선거는 주민소환 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주 헌법에 따라 무능하고 부패한 선출직 공무원을 소환(탄핵) 대상으로 삼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30~35개 주가 소환 제도를 도입하고 있죠. 가장 활발한 곳은 캘리포니아로 1970년대 이후 모든 주지사가 소환투표 시험대에 오르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기업가 출신으로 최연소 샌프란시스코 시장, 부지사 등을 거쳐 2019년 초 주지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임기 4년의 자리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그에 대한 소환 운동이 불붙었습니다.

주민소환 투표 대상이 되며 중도 사임 위기 처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생일 파티에 참석해 ‘내로남불’ 스캔들을 일으켰다. 파티 테이블의 맨 왼쪽이 뉴섬 주지사. 가디언·뉴욕포스트
원인은 주지사가 내건 강력한 방역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음식점 및 상점 실내 운영 금지, 밤 10시 이후 통행금지령 등에 지친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주지사 축출을 위한 소환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엄격 방역에도 불구하고 올 1월 인구 4000만 명에 육박하는 캘리포니아의 코로나19 누적 환자 수가 50개 주중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민심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주민 불만에 직접 불을 댕긴 것은 뉴섬 주지사가 지난해 11월 방역 수칙을 어기고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열린 로비스트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것이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야외 파티여서 괜찮다”고 해명했다가 “뉴섬 일행이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야외 출입문을 닫아 사실상 실내 파티가 됐다”는 종업원 증언이 나오면서 두 배로 욕을 먹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헌법상 주지사 소환을 위한 주민 투표를 벌이려면 15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의 서명은 당원들을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죠. 서명 제출 시한은 지난달 17일로 마감됐고, 현재 서명 확인 과정을 거쳐 29일 소환 투표를 벌일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공화당 측은 200여만 명의 서명을 모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투표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환 투표에서 유권자는 2개의 질문에 답하게 됩니다. 우선 주지사 재신임 여부를 묻고, 다음으로 주지사를 대체할 후보를 선택하게 됩니다. 불신임 쪽 표가 과반수를 넘으면 출마자 중 최다 득표자가 당선됩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소환 반대가 우세합니다. ‘내로남불’ 사건이 리더십에 큰 타격이 되기는 했지만 강력 방역 자체를 부실 행정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부패한 정치인을 탄핵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소환투표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더 들끓고 있습니다. 소환투표 덕분에 당선된 슈왈제네거 역시 재임 기간동안 소환 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번 주지사 선거는 제너의 당선 여부보다는 소환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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