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유재동]‘백신이 최고의 부양책’ 증명한 미국

유재동 뉴욕 특파원 입력 2021-04-13 03:00수정 2021-04-1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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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절반 접종하며 일상 복귀 성큼
백신 확보 여부에 싸움의 승부가 갈려
유재동 뉴욕 특파원
집 앞에 있는 한 창고형 건물은 평소엔 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를 정도로 버려진 곳이었지만 요즘은 매일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선 얼마 전부터 성인이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자격이 주어졌다. 시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맞으려고 ‘예약 전쟁’을 하면서 일상 회복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폭발적인 백신 수요에 맞추기 위해 당국도 공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처음엔 체육관이나 야구장 같은 곳에서만 접종이 가능했지만 요즘에는 동네 약국과 편의점, 영화관 등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백신이 부족했던 전과 달리 나이, 건강 상태, 체류 자격 등은 따지지 않는다. 미리 예약만 하고 주거지를 증명할 서류만 갖고 오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놔준다. 고위험군 대부분이 이미 백신을 맞은 이상, 이젠 누가 더 먼저 맞아야 공정한지는 따질 필요도, 그럴 시간도 없다. 지금은 무조건 ‘빨리, 그리고 많이’ 맞히고 보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지난해부터 백신 개발과 생산에 온 힘을 다했던 미국은 이처럼 접종도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이 하고 있다. 국민들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별 거부감 없이 비교적 잘 동참하는 모습이다. 이런 태도에선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보인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무기는 결국 백신이라는 판단, 그리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강한 목표의식이다. 이런 인식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다. 방역 대책에 많은 허점을 노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백신 개발만큼은 ‘빛보다 빠른 속도’(워프 스피드)로 밀어붙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시물자법까지 동원해가며 백신 확보와 공급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미국이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와 마스크 착용 논란 등으로 어느 나라보다 많은 피해를 봤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자가 성인의 45%를 넘은 지금은 일상 복귀의 고지가 비교적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접종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제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요즘 월가에서는 약 20년 만에 ‘골디락스(Goldilocks)’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정보기술 발달이 불러온 1990년대의 장기 호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요즘 뉴욕·뉴저지의 주요 항만은 화물 컨테이너 물동량이 평년보다 20% 안팎 늘었다. 제조 공장들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데 비상이 걸렸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살아났다는 징조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통제돼 서비스업도 정상 궤도로 복귀하고 각종 비대면 기술의 발달이 산업 혁신으로 이어진다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올해 6.4%의 성장률은 허황된 전망이 아닐 수 있다. 백신이 가장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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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누가 먼저 승리하느냐는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백신 디바이드’가 현실화되고 있다. 집단면역 형성 시기가 몇 개월만 차이가 나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 불행한 시기를 빨리 끝내는 노력에선 뒤처진 측면이 많다. 작년에 무슨 이유로 백신 확보가 지체됐는지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백신#미국#백신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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