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진]하이브리드 오피스에서 일터와 노동의 미래를 보다

김현진 DBR 편집장 입력 2021-04-08 03:00수정 2021-04-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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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정체성 공간(identity workspaces)이다.”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동료들과 함께 감금돼 있기에 그래도 ‘아늑한 철장’이다.”

잔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 프랑스 인시아드대 교수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일터의 미래를 고민하게 된 지금, 사무실에 대한 세계인의 다양한 ‘애증’을 이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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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사태 이후 사무실이란 존재는 큰 도전을 받게 됐다. ‘포스트 코로나’를 꿈꾸지만 ‘위드 코로나’에도 익숙해진 요즘, 집은 사무실의 또 다른 이름이 된 지 오래다. 이에 더해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해줄 ‘제3의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1호점을 낸 뒤, 반년여 만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집무실’은 집에서 일하기 힘든 사람들을 타깃으로 집중형 업무 공간을 제공한다. 예컨대 대형 아파트 단지를 배후 수요로 하는 서울 석촌점에는 매일 밤 9시가 넘으면 그날의 전투 육아를 끝내고 집중 근무를 하려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주택 규모가 작아 재택근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은 일본에서도 ‘제3의 공간’들이 대안형 사무실로 부상하고 있다. 지하철역 내 또는 빌딩 1층에 가로세로 각 2m 사이즈로 들어선 미니 사무실, ‘박스 오피스’가 그 예다. 후지제록스와 텔레큐브 등이 선보인 이 1인용 사무실은 대형 모니터를 완비해 화상회의 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닛산은 캠핑카를 업무 환경에 맞춰 개조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나리타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나리타 익스프레스는 팬데믹으로 이용객이 줄자 열차를 사무실로 빌려주는 사업을 시도했다.

홀로그래픽 오피스는 공간의 제약마저 완벽히 뛰어넘게 해준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반 업무 플랫폼인 ‘스페이셜’이 그 예로, 가상공간에 꾸며진 사무실로 입장하면 직원들의 얼굴 모습을 그대로 본뜬 아바타가 모여 함께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가상현실에서라도 동료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면, 원격근무 시 발생하기 쉬운 ‘정서적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사용자들은 말한다.

오피스(office)의 라틴어 어원은 opi(work)와 facio(make, do)로 ‘일을 만들어 냄’이라는 뜻이다. 재택근무의 명과 암을 모두 경험한 기업들은 이미 직원들이 ‘재택근무 근육’과 ‘오피스 근육’ 모두를 키우도록 업무 툴과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사무실-제3의 공간, 또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일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뉴 노멀이 됐다. 이처럼 미래의 일터는 ‘일을 만들어 내는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런 변화가 노동을 덜어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사무실에 오래 있음’을 ‘헌신’과 동의어로 봤던 오피스 시대의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화상회의에서, 또 업무용 디지털 플랫폼에서 열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미 우리는 ‘21세기형 프레젠티즘’을 목격하고 있다.

김현진 DBR 편집장 bright@donga.com
#오피스#하이브리드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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