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테드 창, 켄 리우… SF 천재들이 한자리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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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수상작 등 SF걸작 모아… 1권에는 대중적 최신작 15편
2권엔 실험적 단편 12편 엮어내… ‘유전자 조작’ 자선사업 이야기
AR기술의 폐해 다룬 작품 눈길

에스에프널 시리즈에 단편을 실은 유명 SF 작가 S L 황, 켄 리우, 테드 창, N K 제미신(왼쪽 사진부터). 황과 제미신의 단편은 지난해 휴고상을 수상했고, 리우와 창의 단편은 로커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사진 출처 각 작가 웹사이트
에스에프널 시리즈에 단편을 실은 유명 SF 작가 S L 황, 켄 리우, 테드 창, N K 제미신(왼쪽 사진부터). 황과 제미신의 단편은 지난해 휴고상을 수상했고, 리우와 창의 단편은 로커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사진 출처 각 작가 웹사이트
에스에프널 2021 Vol.1/S L 황 외 14명 지음·김상훈 외 3명 옮김/480쪽·1만7000원·허블
에스에프널 2021 Vol.1/S L 황 외 14명 지음·김상훈 외 3명 옮김/480쪽·1만7000원·허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미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한’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 사용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이를 사용하려면 작동 암호를 몸 안에 이식한 소녀 ‘나이마’의 몸을 갈라 캡슐을 꺼내야 해서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이 시스템을 고안하고서도 나이마를 딸처럼 아끼는 ‘테지’는 “외부에 새로운 암호를 만들어 너를 죽일 필요가 없게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나이마는 어떤 사람도 대량살상무기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 제안을 거절하고 담담히 시를 써 내려간다. “나는 당신을 주저케 하려고 여기에 있다. 당신은 내가 없기를 바랄 테지만.”(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휴고상 수상작 등 미국 공상과학(SF) 수작을 모아 매년 발행하는 ‘올해의 SF 걸작선(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 2020년판 1·2권이 번역돼 나왔다. 1권 첫 번째 수록작인 ‘내 마지막 기억 삼아’에는 미래 기술과 이를 다루는 새로운 정치체가 등장하지만, 지금의 세계 시민들이 풀어야 할 고민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1권에는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최신 SF 단편소설 15편이 담겼다.

켄 리우는 ‘추모와 기도’에서 증강현실(AR)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가 총기 난사 사건을 추모하는 방식을 그렸다. 총에 맞아 숨진 소녀 ‘헤일리’는 AR 기술로 살아 돌아온 것처럼 재현돼 총기 규제 완화론자들의 도구로 활용된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득세하며 헤일리의 모습은 훼손되고 조롱을 당한다. 사진보다 선명한 AR 기술에 위로받은 유족들이 가상현실에서 온전한 헤일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심리적 피해를 입은 뒤였다.

국내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테드 창은 ‘2059년에도 부유층 자녀들이 여전히 유리한 이유’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 자선사업이 벌어지는 미래사회를 상상했다. 유전자는 빈부격차의 근원이 아니며, 이 같은 사업이 오히려 더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작가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에스에프널 2021 Vol.2/N K 제미신 외 11명 지음·장성주 외 2명 옮김/488쪽·1만7000원·허블
에스에프널 2021 Vol.2/N K 제미신 외 11명 지음·장성주 외 2명 옮김/488쪽·1만7000원·허블
2권에는 실험적인 단편 12편을 엮었다. 다소 무겁고 난해할 수 있지만 탁월한 정밀함으로 SF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작품들이다. 지난해 휴고상을 수상한 N K 제미신의 ‘비상용 피부’에는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외계 행성에 자리를 잡은 인류와 지구에 남은 이들 사이의 대립이 그려진다. 두 인류의 만남으로 각 행성이 건설한 국가의 이상이 서로 충돌한다. SF 작가 김초엽, 천선란이 주목받고 국산 SF 영화 ‘승리호’가 흥행한 걸 계기로 SF에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미국의 유수 SF 작가들이 쓴 최신작을 음미해볼 만하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테드 창#켄 리우#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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