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북을 모티브 삼은 작품 선보여

“불을 뿜는 용과 맞서 싸우겠다고 결정했다면 14페이지로, 용을 피해 깊은 동굴 속으로 도망치겠다고 결정했다면 31페이지로 가시오.”
1980년대 국내 서점 추리소설코너 근처에 이런 식의 지시문이 몇 쪽 간격으로 반복되는 모험 게임북이 진열돼 있었다. 주인공의 판단을 독자가 선택해 상이한 결말을 맞도록 구성한 아날로그 인터랙티브(양방향) 콘텐츠. 5월 27일까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을 여는 미국 화가 헤르난 바스는 이 게임북 시리즈 ‘Choose Your Own Adventure’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구식 컴퓨터 어드벤처 게임의 원형이 된 이 시리즈는 총 230여 개 타이틀이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시장에서 2억60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작업실을 오가며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기이한 이야기’를 작품 주제로 삼는 바스는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통해 관람객과 그림의 연결로를 찾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모든 그림에는 명료한 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한 이미지가 담겨 있다. 거센 풍랑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조각배를 탄 사람을 그린 아크릴화 ‘Out To Sea’와 ‘The Young Man And The Sea’의 주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했던 소년 마놀린이다. 애써 잡은 고기를 잃고 돌아와 허망감에 몸져누운 노인을 위로하며 커피를 건네던 소년이 성장해 혼자 바다로 나간 모습을 묘사했다.
또렷한 소재와 형상이 전하는 메시지를 애매하게 흩뜨리는 것은 인물의 표정이다. 폭풍을 극복하고 살아남겠다는 결연함인지, 홀로 상어를 포획했다는 성취감인지, 오락가락하는 생사기로에 대한 공포감인지, 끝없는 노 젓기에 지친 체념인지, 한 가지로 정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림 속 인물들의 눈빛에서 스며 나온다.
쿠바 이민 2세로 26세 때 뉴욕 휘트니비엔날레에 초청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바스는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자신의 스토리로 재구성해 작품의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 조가비와 식물을 채집해 집안을 가득 채우는 괴벽을 가진 소년들을 그린 연작 ‘케이스 스터디’ 속 인물들 역시 평온한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띠고 있다.
바스는 “내 그림 속 인물들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의 인물이 가진 생각과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과정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마흔세 살인 나 또한 아직 어른이 무엇인지, 내가 어른인지 아닌지 명확히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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