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차마 못꺼낸 말… “엄마, 이번 설에도 못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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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최전선 서울의료원의 설

간호사 아들과 손 맞댄 엄마 9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최구현 간호사가 음압병실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 정순이 씨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방호복 차림의 아들을 처음으로 본 어머니는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 간호사는 이번 설 연휴에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본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간호사 아들과 손 맞댄 엄마 9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최구현 간호사가 음압병실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 정순이 씨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방호복 차림의 아들을 처음으로 본 어머니는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 간호사는 이번 설 연휴에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본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9일 오전 11시. 경남 양산시에서 미용실을 하는 정순이 씨(54·여)에게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서울에 혼자 사는 막내아들이었다. 아들은 지난해 설부터 고향에 내려오지 못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만난 아들은 하얀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아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다. 어떤 일을 하는지 들었지만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힐까….”

화면 속 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들 최구현 간호사(27)는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101병동에서 일한다. 그는 이번 설 연휴에도 계속 근무한다. 이날 환자를 돌보기 전 최 간호사는 짬을 내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올해 설에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자는 그렇게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지금까지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는 2514명. 지금도 64명이 입원 중이다. 대부분 최 간호사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뻘이다. 그는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환자들의 아들, 손자가 되겠다”며 “올 추석에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두번의 명절을 코로나환자와 함께… 내년엔 고향 갈 수 있기를”


코로나 최전선 서울의료원의 설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9일 새해 인사 메시지를 들고 있다. 서울의료원은 설 연휴 기간에도 매일 330여 명의 직원이 나와 환자를 돌볼 예정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9일 새해 인사 메시지를 들고 있다. 서울의료원은 설 연휴 기간에도 매일 330여 명의 직원이 나와 환자를 돌볼 예정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1월 30일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받았다. 지난해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5번 확진자’가 이곳으로 이송됐다. 그로부터 1년, 2514명의 환자가 이 병원을 거쳤다. 명절이 두 번 더 지나는 동안 병원 의료진, 직원들은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9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만난 최구현 간호사(27)는 지난해 설과 추석에 고향인 경남 양산시를 갈 수 없었다. 올해 설에도 환자를 돌볼 계획이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 번의 명절을 모두 병원에서 맞게 됐다.

“제가 돌보던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위중해졌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임종을 지킬 수 없었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마지막 영상통화를 해 드리는 것뿐. 영상 너머에서 온 가족이 ‘엄마’를 외치며 우는데 저도 같이 울 수밖에 없었어요.”

최 간호사는 설 명절을 앞두고 ‘가족 간 전파’를 걱정했다. 그동안 간호한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가족 사이에 코로나19가 전파됐다. 심지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한 병실에 입원한 사례도 있었다. 최 간호사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이번 설에는 꼭 방역 수칙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의료원 영양팀 김은화 씨
서울의료원 영양팀 김은화 씨

명절을 반납한 건 의료진만이 아니다. 이 병원은 설 명절 동안 하루 330명이 출근한다. 영양팀 조리사 김은화 씨(56·여)도 그중 한 명이다.

조리실에서 만난 김 씨는 코로나19 병동 환자 도시락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빨간 배추김치, 노릇노릇한 피망전과 조기구이, 초록색 나물무침을 차곡차곡 담았다. 김 씨는 도시락에 반찬 하나를 담을 때도 색 조합을 고려한다고 했다. 김 씨는 “병실에 갇힌 코로나19 환자는 하루 세 끼 식사 시간만 기다리는 분이 적지 않다”며 “도시락을 열었을 때 모양이 예쁘면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격리병상 환자 식사는 도시락 형태로 제공된다. 환자 상태와 기저질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도시락을 내야 한다. 그 종류가 10가지에 이른다. 김 씨는 도시락 하나하나에 환자 이름을 적어 병동으로 올려 보낸다. 그는 “설날 아침식사로는 떡국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료원 임상병리사 안영임 씨
서울의료원 임상병리사 안영임 씨

이 병원 임상병리사 안영임 씨(36·여)의 지난 한 해도 누구 못지않게 치열했다. 그는 선별진료소와 병동에서 오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체를 분석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직접 다뤄야 해 전신 방호복을 입는 일도 잦다.

안 씨는 “지금 우리 모두는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숨 막히는 방호복보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가 더욱 답답하다는 설명이다. 안 씨 역시 지난해 강원도에 있는 부모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내년 초 아버지 칠순 잔치 때까지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안 씨의 소망이다.

송관영 서울의료원장은 “이번 명절에도 전쟁터 같은 병원을 지키며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과 직원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송 원장은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될 때까지는 가족, 친지와의 모임도 최대한 자제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설 역시 ‘비대면 명절’로 지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이번 설에는 멀리서 마음으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이 효도”라며 “부모님과 영상으로 만나는 명절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설 연휴 기간 이동통신사들은 화상통화에 사용되는 데이터를 누구에게나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는 설 연휴 이후에 적용될 사회적 거리 두기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등 방역수칙 변화 내용을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지운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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