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마지막 프랑스어 독일어 수업이 온다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1-02-10 03:00수정 2021-02-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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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립고교 프랑스어 독일어 교사 고작 8명, 후년이면 다 퇴직
중국어와 일본어에 편중된 제2외국어교육 바람직하지 않아
20년 넘게 중단된 충원 재개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올 2월 현재 서울시 공립고교에 프랑스어 정교사는 6명 남았다. 그나마 4명은 올해 중 정년퇴직하고 나머지 2명은 내년과 후년 각각 정년퇴직한다. 독일어 정교사는 2명 남았다. 둘 다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전멸 위기다.

학생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기 싫어해서, 혹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이렇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조사한 ‘교육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쟁점’이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제2외국어 중에서 학생들의 수업 요구에 비해 교사 수가 적은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과목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속한다.

학생들의 수업 요구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가장 많다. 그러나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대한 수업 요구도 그다음으로는 많다. 과거에는 고교 제2외국어 교육이 프랑스어 독일어로 편향돼 있었다면 오늘날은 중국어 일본어로 편향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여전히 제2외국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언어이고 독일어는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언어다. 동서양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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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비즈니스만 생각하면 영어만 배워도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교역이 많은 나라이므로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알면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언어로서 간체(簡體) 한자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용한 언어가 되기 힘들고 오히려 배울수록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화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어느 정도는 유용하지만 우리의 프랑스어 독일어 능력이 떨어지면 프랑스어 독일어 문헌을 다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고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워봐야 얼마나 많이 배우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익숙함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로 대화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지만 영어는 오래 접해 친밀하게 느끼고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더 깊이 공부하기도 한다. 고교 때 접해본 제2외국어는 평생 친밀하고, 접해보지 않은 제2외국어는 평생 낯설다. 낯설어지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어에서 명사 형용사의 성(性)·수(數)·격(格)에 따른 변화(declension)와 동사의 인칭·시제(時制)·태(態)·법(法)에 따른 변화(conjugation)는 영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남유럽 언어를, 독일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 북유럽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서양의 한자(漢字)나 다름없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제2외국어 과목이 다양해지고 상대적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수업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한 고교에 한 명의 프랑스어 교사나 독일어 교사를 두기 어려워진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약 5년 전부터는 한 학교 소속의 교사가 교육청 소속의 순회교사로 전환돼 인근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사마저 퇴임해버리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임용고시를 통해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를 뽑지 않은 지가 20년이 지났다. 대학 사범대에는 불어교육학과와 독어교육학과가 남아 있지만 20년이 넘도록 국공립 교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순회교사 제도라도 유지하려면 올해부터라도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간제 교사나 시간강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완에 불과하지 근본적 대책이 되지 않는다.

공립고교보다 훨씬 많은 사립고교의 상황은 더 어렵다. 사립고교에 남아있는 정교사들도 5년 내로 거의 다 정년퇴임한다. 사립학교는 교사 임용권이 교육청이 아니라 각 학교에 있어 순회교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청이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지정해서라도 교사 채용을 위한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립고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한번 끊어진 맥은 다시 잇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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