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사격장 아파치 훈련 재개… 포항 시민들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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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5일까지 주한미군 사격 훈련… 국방부 ‘일방적 통보’에 강력 반발
지역주민 ‘사격장 폐쇄’ 촉구 집회… 권익위 “조정기간中 훈련 잠정 중단”

4일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에서 주한미군 훈련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부 진입을 시도해 경찰이 막고 있다. 뉴스1
4일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에서 주한미군 훈련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부 진입을 시도해 경찰이 막고 있다. 뉴스1
“지진이 다시 일어난 줄 알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정서기 이장(70)은 8일 최근 주한미군이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훈련을 했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마을과 수성사격장은 직선거리로 1km∼1.5km. 아파치 헬기가 저비행하며 사격을 할 때 마을 주민 80여 명은 소음과 진동으로 몸서리를 쳐야 한다.

주한미군은 2019년 4월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기동 훈련을 처음 실시했다. 이후 매년 몇 차례 이어졌다. 올해 첫 훈련은 4일 시작했다. 정 이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손자와 아들 가족들도 보지 못하는데 불청객인 헬기가 들이닥치니 분노가 더 치민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이 설 명절을 앞두고 포항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재개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8일 포항시와 국방부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4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첫 훈련이 있었던 4일은 반대한 마을 주민과 이를 막은 군 간에 일촉즉발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날 장기면 주민들이 구성한 포항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반대위)는 주한미군의 사격 훈련 중단과 사격장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사격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현장에는 이강덕 포항시장을 비롯해 경북도의원, 포항시의원 등도 참석해 주한미군과 국방부를 비판했다.

주민들이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은 국방부가 지난해 약속과 달리 일방적으로 훈련 일정을 추진해서다. 조현측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장(74)은 “국방부가 지난해 11월 주민 반발로 사격 훈련을 중단하면서 향후 동의 없이 사격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일방적으로 사격 재개를 통보했다”고 하소연했다.

1960년 조성된 수성사격장은 1246만 m² 규모다. 해병대와 육군이 포병과 전차 사격장으로 썼다. 훈련에 동원한 무기의 화력이 강해 소음 피해가 컸지만 이번처럼 주민 반발이 크지는 않았다.

주한미군의 핵심 전력인 아파치 헬기는 다른 무기들보다 소음 등의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차 미사일과 분당 650발을 발사할 수 있는 30mm기관포를 탑재해 사격 훈련 시 엄청난 소음을 유발한다. 더구나 훈련을 시작하면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쉼 없이 진행한다. 간혹 오후 6∼10시까지 야간 사격도 실시한다. 주민 김순덕 씨(71·여)는 “전화 통화와 일상적인 대화는 힘들다. 훈련할 때 누워 있으면 진동이 울려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말했다. 민물고기인 미꾸리 양식장을 운영 중인 주민 정말영 씨(56)는 “사격에 놀란 미꾸리들이 막 날뛴다. 출하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민의 동의 없이 2019년 갑자기 훈련을 시작한 것도 반발하는 이유다. 주한미군은 2019년 4월 1일부터 열흘 동안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을 했다. 같은 해 10월에도 보름 동안 실시했으며 지난해 2월에는 20일 동안 진행했다. 조 위원장은 “주민들이 국방부에 민원을 계속 제기하자 경기도 포천 사격장 주변 반발이 심해서 옮긴 것이라는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했다.

주민 2800여 명은 지난해 8월 21일 반대위를 구성했다. 지난달 19일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수성사격장 이전 또는 완전 폐쇄를 요구하는 집단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앞으로 지역 시민단체 등과 함께 범대책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로 장기면 주민과 국방부 해병대 관계자 등이 모인 가운데 조정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의 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사격 훈련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수성사격장#아파치 훈련#주한미군#국민권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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