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염병도 가짜뉴스도… 확산 막으려면 패턴을 읽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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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애덤 쿠차르스키 지음·고호관 옮김/380쪽·1만9000원·세종서적

로널드 로스는 모기 숫자와 말라리아 확산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감염병의 확산 추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했다. 저자는 감염병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현상 속에 전염의 원리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로널드 로스는 모기 숫자와 말라리아 확산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감염병의 확산 추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했다. 저자는 감염병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현상 속에 전염의 원리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년)에서 수학자 존 내시는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비둘기 떼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더니 기숙사 유리창 위에 온갖 수식들을 빼곡히 적는다. 규칙성이라곤 별로 보이지 않는 비둘기들의 행동패턴에서 수학적 원리를 찾아낸 것. 훗날 내시는 상대방의 선택에 의존하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행동패턴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 모델(내시 균형)을 만들어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역학자이자 수학자인 저자가 감염병과 컴퓨터 바이러스, 가짜 뉴스, 금융위기, 폭력 사건 등 각종 사회 현상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전염’의 패턴을 수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의학자 로널드 로스는 모기 개체 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면 완전히 박멸하지 않고도 말라리아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른바 ‘모기 정리(定理)’다.

로스는 이를 설명하면서 ‘R값(감염재생산지수)’ 개념을 도입했다. R값은 확진자 1명이 평균 몇 명을 추가로 감염시킬 수 있는지를 뜻한다. 로스는 모기 수를 줄이면 감염 기회를 줄여 전염병 확산세를 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수학 모형을 이용한 말라리아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오늘날 R값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뿐만 아니라 에이즈, 에볼라 등 모든 감염병 방역에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등 방역당국 핵심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브리핑에서 “R값을 1 이하로 낮추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언을 이어가는 배경이다.

저자는 감염병의 확산 원리를 수학 모델로 분석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러 사회 현상에 숨어 있는 전염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연쇄 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천연두 퇴치 메커니즘을 활용한 미국 시카고 사례가 대표적이다. 천연두와 폭력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노출된 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역학자들은 천연두 신규 확진자가 나타나면 감염된 사람이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가족이나 이웃 등도 백신을 맞게 하는 ‘포위 접종’ 방식을 썼다. 시카고시는 폭력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사건 초반에 용의자의 주변 인물들을 집중 관리하는 일종의 포위 접종 방식을 채택했다. 천연두 확산을 막는 원리로 추가 폭력을 막은 셈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대개 팔로어가 적은 이들이었다. 전파 기회가 많다기보다는 주목하고 공유할 확률이 높은 가짜 정보가 잘 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해로운 콘텐츠와 맞서 싸우면 어떤 사람이 그 콘텐츠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직접적 효과와 함께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 못하는 간접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전염병#가짜뉴스#확산#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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