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며느라기 작품들… 더 나은 소통방식 찾는 과정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다큐 영화 ‘B급 며느리’ 부부가 본 드라마 ‘며느라기’의 고부갈등
시댁에서 인정받고 싶은 결혼초기 ‘간섭도 관심이려니’ 참았지만
잿빛으로 바뀌는 현실에 한때 좌절… 결국 시모도 과거 누군가의 며느리
갈등 통해 서로 알아가고 처지 공감

“나만 잘하면 며느라기(期·시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시기) 같은 거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의 대사다. 싹싹한 성격에 예쁨받는 며느리였던 그는 시댁으로 인한 고충에 조금씩 의문을 갖는다.

“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2018년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김진영 씨(39)의 대사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던 김 씨는 시부모와 다투고 1년 2개월 동안 시댁을 방문하지 않았다. ‘B급 며느리’를 함께 만든 김 씨와 남편 선호빈 다큐멘터리 감독(40)은 ‘며느라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1일 이 부부를 만나 감상을 들었다.

#1화. 사린의 회사 선배가 ‘며느라기’에 대해 설명한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시집살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시기인 며느라기가 있단다. 김 씨도 2011년 결혼 후 1년간 며느라기 시절을 보냈다. 시어머니는 하루 평균 7통의 전화를 했다. 그래도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씨는 “드라마에서처럼 내 시댁 식구 중에도 도드라지게 못된 사람은 없다. 그걸 아니까 관심이라고 여기고 문제 삼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4화. 제사가 있던 날, 사린의 남편 구영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사린과 시어머니만 제사 준비로 바쁘다. 시댁 집은 주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고, 주방도 식사 공간과 싱크대가 문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세트장은 며느리 시선에서 본 시댁의 갑갑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선 감독도 영화를 촬영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 넓지 않은 집이지만 거실과 주방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는 것. “어머니와 아내는 부엌에서 싸워 대는데 거실에 있는 사람들은 상황을 모르는 듯 안부 인사를 나누더라고요.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구분된 공간이었어요.”

#6화. 사린에게 “먼저 밥 먹는다”는 남편의 문자가 왔다. 사린은 결혼 전 야근하는 자신을 위해 초밥을 사온 남편을 떠올린다. 색 보정으로 과거는 밝게, 현재는 빛바랜 느낌으로 연출됐다. ‘B급 며느리’ 말미에도 신혼 시절 김 씨 모습이 나온다. 김 씨는 이따금 마냥 밝던 그때가 그립단다. 살다보면 사랑이 마모된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속도가 있었다. 그런데 3년 만에, 그것도 고부갈등으로 남편과의 유대감이 사라졌다. 김 씨는 “잿빛으로 바뀌는 현실에 대한 느낌을 실감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10화. 구영의 여동생인 미영은 시댁 김장을 위해 ‘엄마 찬스’를 쓴다. 힘겹게 배추를 절이며 엄마의 노고를 알게 된다. 선 감독은 명절을 쇠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짜증을 내던 자신의 어머니를 오래도록 기억한다. 당시 어머니는 당신을 ‘선씨 집안의 A급 며느리’로 규정했다. 김 씨는 “우리 모두 어머니들의 양육에 빚지고 살았다. 시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저와 시어머니의 다툼을 보며 고통스러웠을 남편의 감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김 씨는 1년 넘게 시부모와 다퉜음에도 이제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고 실망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며느라기’ 시청자들도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며 때론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종영을 한 회 앞둔 지금 사린이 남편, 시댁과의 갈등을 두고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해하는 이유다. 김 씨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이 정답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소통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서열화된 세대 간 소통 방식 탓에 누군가는 의견과 감정을 무시당하고 갈등 자체가 금기시됐다”면서 “최근 며느리 관련 작품들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을 넘어 더 나은 교감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시월드#며느라기#b급 며느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