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밝힌 용기와 도전 찾아간 파랑새, 더나은 내일 향해 날다

장원재 기자 입력 2020-12-12 03:00수정 2020-12-12 03:52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창간 100주년 기획]동감_백년인연
오연상 원장이 9일 서울 동작구 오연상내과에서 동아백년 파랑새와 고등학생 시절 동아일보에 낸 백지광고 지면이 담긴 액자를 앞에 두고 서 있다. 동아일보는 ‘동감_백년인연’ 캠페인의 일환으로 6월 말 오 원장을 신문박물관으로 초청해 파랑새와 액자 등을 전달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동작구 덕봉빌딩 4층 오연상내과에선 7월부터 길이 20cm의 투명한 파랑새가 환자를 맞고 있다. 새와 함께 환자를 맞는 의사는 1987년 박종철 열사를 검안한 후 동아일보에 경찰의 물고문 흔적을 전해 민주화의 기폭제를 마련한 오연상 원장(63)이다.

새 옆엔 33년 전 중앙대용산병원 전문의 시절 오 원장의 사진과 그가 중앙고 재학 시절(1975년) 동아일보에 냈던 백지광고 지면이 담긴 액자가 있다. 파랑새와 액자는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가 소중한 인연을 기리는 ‘동감_백년인연’ 캠페인의 일환으로 선물한 것이다. 오 원장은 “단골 환자들은 액자 사진을 보고 ‘원장님이 저렇게 젊었던 시절도 있었네’라면서 놀란다”며 웃었다.

최준호 터치컴퍼니 대표는 지난달 24일 ‘동감_백년인연’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인 첫 태평양 횡단 요트맨 이재웅 노영문 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날짜의 신문에서 둘의 태평양 횡단 소식을 접하고 2014년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넜다. 최 대표가 9일 파랑새호 영웅들과 함께 받은 파랑새 앞에서 기념 티셔츠를 펼쳐 보이고 있다. 최준호 씨 제공
파랑새는 11월 말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16층으로 날아갔다. 남성 화장품을 파는 스타트업 터치컴퍼니의 최준호 대표(40)는 “세계에서 딱 300명만 가지는 특별한 파랑새라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다”고 했다.

최 대표에게 파랑새만큼 기념할 일은 평생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는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80년 한국인 첫 태평양 횡단을 성공한 죽마고우 요트맨 이재웅(68) 노영문(68) 씨를 지난달 24일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주요기사
최 씨는 태어난 날(1980년 8월 7일) 발행된 동아일보 신문에서 파랑새호 태평양 횡단 성공 소식을 읽고 자극을 받아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는 ‘오션 로잉’ 방식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최 씨는 “두 영웅과 찍은 사진도 액자에 넣어 전시할 것”이라며 “동아일보 덕분에 다시 가슴이 뛰게 됐고 생계 때문에 미뤄놨던 새로운 모험을 생각하게 됐다”며 웃었다.


○ 대외 행사 대신 소박하고 따뜻한 감사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외부 인사를 초청한 과시성 창간 기념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정말로 인연이 깊은 분들을 모시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3월 동아일보 평생 독자이자 백지광고를 냈던 아버지를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 동아연극상을 탄 김재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7)를 시작으로 총 8차례 감사 행사가 진행됐다. 캠페인은 ‘동감_백년인연’으로 명명했다. 동감(東感·동아가 감사한다)과 ‘독자와 공감한다’는 동감(同感)의 의미를 담았다.

동아일보는 진심을 전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로 이들을 초청했다. 100주년 기념 오브제로 300개만 만든 동아백년 파랑새와 마음을 담은 기념품을 전했다.

김 교수는 과거 동아일보 사옥이었던 신문박물관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전시 코너 마지막에 아버지 실명이 포함된 백지광고 감사장을 전시했다. 대구에서 교원 생활을 한 김 교수의 아버지(김태용·1930∼2004)는 1975년 익명으로 백지광고를 냈다.

감개무량한 표정의 김 교수 앞에 김재호 사장이 ‘깜짝 등장’해 본사가 특별 제작한 실명 감사장과 기념메달, 아버지 이름이 유일하게 등장한 신문 지면을 선물했다. 김 교수는 “태어나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교수는 행사 후 가족 모임에서 당시 행사와 기념품을 소재로 형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1920년 4월생으로 동아일보와 동갑내기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0)는 6월 중순 서울 중앙학교 역사관으로 초청했다. 책에서 중앙고 교사 재직 시절(1947∼1954년)을 두고 “평생에서 가장 학생들과 사랑을 나눈 기간”이라고 쓴 것에 착안했다. 김 교수는 중앙고에서 동아일보 창립자이자 중앙학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일보와 함께 100년을 살았다”는 김 교수는 연세가 무색하게 행사 반시간 전 도착해 교정을 둘러봤다. 역사관에선 고등학생들을 만나 “평양 숭실중 기숙사에서 동아일보를 봤는데 신사 참배를 하라고 해 윤동주 시인은 고향에 돌아가고 나는 휴학했다” 등의 이야기를 전했다. 중앙고 3학년 이시현 군은 “교과서에 나오는 윤 시인과 대화했다니 신기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함께 역사관을 둘러본 김재호 사장은 오찬을 하며 김 교수의 본보 칼럼과 인터뷰, 사진 등을 모아 제작한 책자 ‘백년의 동반자’와 파랑새를 전했다. 이와 함께 사진이 포함된 첫 칼럼(1964년 5월 18일)과 가장 최근 칼럼(2020년 6월 5일)을 액자에 담아 증정했다.

당시 전한 파랑새는 지금도 ‘100세 철학자’의 서재를 장식 중이다. 김 교수 측은 “더 많은 이들이 보도록 내년이나 후년에 강원 양구 인문학박물관(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에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허례허식 뒤로… 진정성 느껴져”

크게보기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본보와의 소중한 인연을 기리는 ‘동감_백년인연’ 캠페인을 진행했다. 왼쪽 사진부터 3월 23일 신문박물관을 둘러보는 김재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5월 20일 충남 천안 자택에서 파랑새와 기념품을 들고 있는 고 박재표 순경 유족, 6월 17일 중앙학교 역사관을 둘러보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왼쪽), 3월 12일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취재차에 탄 경광숙 전 소방관, 10월 30일 제98회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정구) 대회에서 포즈를 취한 문대용(왼쪽) 문혜경 선수.
고 박재표 씨(1932∼2017)는 1956년 경찰의 표 바꿔치기를 동아일보에 제보했다. 24세 청년 순경이었던 그는 한국 첫 부정선거 고발자로 기록됐지만 경찰에서 쫓겨났고 조작된 증언으로 10개월 동안 옥살이까지 했다. 의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동아일보의 제안으로 1963년 본보 사옥 경비원으로 입사해 1990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자재부 등에서 일했다.

동아일보는 5월 박 씨 유족 자택(충남 천안)을 찾아 48년 전 동아방송(DBS) 정계야화에 출연했던 고인의 육성을 전했다.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고인의 목소리를 듣던 부인 김선월 씨(82)는 “예전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박제균 논설주간은 “고인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육성 녹취를 사진 지면과 함께 편집해 만든 소책자 등의 기념품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손녀인 박선영 CBS PD는 행사 후 동아일보에 편지를 보내 “새벽 동아일보 오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낙”이라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털어놨다. 이어 “100주년에 허례허식을 뒤로하고 동아일보에 새겨진 역사적 순간을 되돌아보며 인물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한 것이 같은 언론 종사자로서 의미가 깊다고 느꼈다. 깊이 감사드린다”고 썼다.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동아일보 취재차량을 타고 출동했던 경광숙 전 소방관(63·당시 서울 도봉소방서 구조대장)은 양복을 입은 채 현장에 뛰어들어 수십 명을 구했다. 이후 인터뷰 기고 등으로 인연을 이어가며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왔다.

경 전 소방관은 참사 25주년을 맞아 7월 중순 서울 양재시민의숲 삼풍참사위령비를 찾았다. 박 주간과 당시 참사를 취재했던 박중현 논설위원 등이 함께 헌화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경 전 소방관은 위령비 앞 훼손된 바닥을 보며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사망자 502명)를 냈던 참사가 잊혀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일행은 참사 직전 대피해 목숨을 건진 뒤 기부왕으로 변신한 주종평 씨(51)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주간은 본보 기고와 인터뷰 지면 등으로 만든 소책자와 파랑새를 증정했다. 그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파랑새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저보다 더 좋아한다. ‘(가칭)국민안전운동본부’ 설립을 추진 중인데 사무실을 내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가져다 놓을 것”이라고 했다.

○ 도전과 모험, 꿈꾸는 청년정신

본사는 또 동아일보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청년들을 초청해 꿈을 응원했다.

소프트테니스(정구) 선수인 문대용(27·문경시청) 문혜경(23·NH농협은행) 남매는 오빠가 2007년 제85회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중등부에서 우승한 후 지금까지 대회에 번갈아 가며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1923년 시작된 이 대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일 종목 대회다.

유년 시절 아버지를 잃고 오빠가 7세 때 왼쪽 눈을 실명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역경을 딛고 정구 첫 국가대표 남매가 됐다. 두 남매의 경북 문경 고향집에는 동아일보 스크랩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아일보는 제98회 대회 개막에 맞춰 10월 말 두 선수에게 파랑새와 아카이브에서 찾은 사진 지면 등으로 구성한 소책자를 전했다. 박현진 문화사업본부장은 “동아일보는 지나온 한 세기처럼 스포츠 정신을 고취하고 정구를 응원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기는 매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회”라며 각오를 다진 문혜경 선수는 일주일 후 여자 일반부 단식에서 우승했다. 2년 연속 챔피언이 된 그는 “동아일보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주셨는데 우승까지 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현재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문대용 선수는 “파랑새를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그림자 아이’(미등록 이주 아동)였던 페버 씨(21)는 2017년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다가 동아일보 보도 후 풀려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추방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출입국관리사무소가 태도를 바꾼 것. 이후 유학생 비자를 받아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에 성공했고 8월 졸업 후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업했다. 본사는 8월 말 코로나19 확산으로 페버 씨를 행사에 초청하지 못하고 대신 사회 진출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졸업 양복을 선물했다.

이어 11월 광주에서 만나 인터넷 영어 수강권과 파랑새를 증정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자꾸 영어로 말을 걸어 곤란하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페버 씨의 꿈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에 꼭 든다”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파랑새 사진으로 바꿨다. 12월 초엔 “한국 사회가 그림자 아이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그의 기고가 동아일보 지면에 실렸다.

동아백년 마지막 행사로 11월 말 파랑새호 요트맨 두 명(이재웅 노영문)과 뒤를 이어 태평양을 건넌 최준호 씨를 초청했다. 이 씨와 노 씨는 “40년 만에 와 본다”며 과거 그대로 보존된 일민 선생 기념실에서 태평양 횡단을 꿈꾸던 28세 청년 시절을 회상했다. 임채청 부사장은 동아일보를 대표해 이들에게 태평양 횡단 당시 사진과 지면 등으로 만든 소책자와 헌정 티셔츠, 파랑새 등을 증정했다. 세 모험가들은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청년의 모험과 도전을 소개하고 격려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동감_백년인연#동아일보#동아백년 파랑새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