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닷없이 콧수염 얘기를 꺼내서 의아해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다. 서양권에서는 꽤 많이 알려져 있긴 한데 11월은 ‘모벰버(Movember)’의 달이다. 모벰버는 콧수염(moustache)과 11월(November)의 합성어로 매년 11월에 열리는 자선 행사를 말한다. 이 행사는 전립샘암, 고환암, 남성 자살 같은 남성 이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시작됐다. 모벰버에 참여하는 남자들은 한 달 동안 수염을 깎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후원을 받고, 받은 후원금은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원래는 며칠 단위로 개인 SNS에 수염을 깎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인증샷으로 찍어 올리는데 세련된 신사가 점점 털북숭이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버킷리스트 같은 외국에서 들여온 캠페인 등을 많이 알게 되고 진행하지만 모벰버에 참여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회사원이 말쑥하게 면도를 하고 출근을 해야만 하는 한국 기업 문화 때문일 수 있다.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벰버는 계속 인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모벰버 운동을 통해서 걷은 기부금 총 1조여 원 중에 겨우 6억 원이 아시아권에서 모금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 연예인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자주 듣게 되는데 적극적인 자살 예방 대책을 보지 못했다. 유명인의 자살이나 동반 자살 사건이 뉴스에 보도될 때마다 며칠 동안 충격에 빠지지만, 금세 우리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사건은 그대로 잊혀져 간다. 미국 사람들이 총기 난사에 반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들을 접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자살 이슈에 대한 대책이 미흡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이미지에도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BTS, ‘기생충’, 한류, K방역 등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자살 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쌓아 올린 한국의 멋진 이미지가 언젠가 실추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경제도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나 또한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도 쉽게 만나지 못하고 취미 생활도 여유롭게 하지 못해서 쌓인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코로나 블루’라는 올해 새로 생긴 우울감의 원인이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더 많은 남성들이 모벰버에 동참하면 좋겠다. 그리고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우울증에 대한 지나친 편견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인식이 유독 강한 이 나라에 사는 모든 한국 남자분들, 저와 함께 내년 11월에는 콧수염을 기릅시다! 물론, 수염이 적어 잘 안되는 분도 많이 있을 테니 ‘콧수염 선망’으로 우울감이 더 높아질까 걱정이긴 하다. 기르지 못하면 속상해도 된다. 우리도 울 권리가 있고, 때론 슬퍼할 권리도 있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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