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상하이가 스파이들의 무대가 된 까닭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11-21 03:00수정 2020-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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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 1927-1949/홍윤표 지음/380쪽·1만9000원·렛츠북
량차오웨이(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2007년 영화 ‘색, 계’. 194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국민당 정보조직과 중국 내 친일 괴뢰정권 정보조직의 치열한 공작을 그렸다. 동아일보DB
1931년 4월, ‘여명(黎明)’으로 불리던 중국 공산당 고위급 스파이 구순장이 국민당 군에 체포된다. 그는 잡히자마자 바로 전향을 선언하고 공산당 지도자들의 은신처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한다. 그 직후 상하이에 있던 공산당 주요 인사 대부분이 모습을 감춘다. 난징의 국민당 정보기관에 타전된 암호를 가장 먼저 해독한 인물은 바로 공산당의 이중 스파이 첸좡페이였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궤멸될 뻔했던 역사는 오랜 시간 정체를 숨긴 스파이에 의해 이렇게 뒤바뀐다. 며칠 뒤, 상하이의 구순장 집에 ‘아는 청년들’이 찾아온다. 구순장의 가족들은 반가워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청년들은 집 주인 가족과 이웃 등 아홉 명을 순식간에 밧줄로 처치했다. 끔찍한 이 참극을 지휘한 인물은 중국 공산당 정보조직의 초기 설계자이자 훗날 총리가 되어 세계에 ‘온화한 지도자’로 각인된 저우언라이였다.

오늘의 ‘신(新)중국’은 바야흐로 스파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 ‘위장자(僞裝者)’ ‘마작’ 등 중일전쟁기의 첩보물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륙을 매료시킨다. 2017년에는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스파이전선 90주년 기념대회’가 열려 비밀 요원들의 후손들이 집안에서 전해져온 영웅담을 나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자부심이 과거의 은밀했던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국민당, 공산당, 중국의 친일 괴뢰정권 등 3자가 긴박한 첩보전을 펼친 20여 년의 역사를 조감한다. 국민당에선 정식 기구인 ‘중통’과 군 첩보조직인 ‘군통’이 두 갈래로 첩보 업무를 펼쳤다. 1934년 국민당이 공산당을 토벌하면서 군통의 역할이 중통을 누르기 시작한다. 1940년대 군통과 중통의 대립은 국민당 첩보 활동의 약화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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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스파이들의 천국과 지옥이었던 도시, 상하이에 초점을 맞춘다. 왜 유독 상하이에서 첩보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을까. 상하이는 열강이 조계지(租界地)를 둔 ‘중국 속의 세계’였다. 조계지마다 행정권과 재판권이 있었다. 숨어야 하는 자는 누구나 상하이로 숨어들었다.

3부는 첸좡페이를 비롯해 중국의 역사를 바꾼 전설적 스파이 7명을 소개한다. 1947년 3월 국민당 군의 옌안 폭격으로 홍군(紅軍)은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국민당 군이 옌안에 진입했을 때 도시는 텅 비어 있었고 마오쩌둥이 남겨둔 조롱의 시 한 수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당군의 총지휘관인 후쭝난의 부관 슝샹후이가 홍군의 스파이였던 것이다. 슝샹후이는 미국 유학까지 마친 뒤 1949년 공산화된 중국으로 귀국하고,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큰 역할을 했다. 13년 동안 장제스의 속기사로 일하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마오쩌둥에게 전달한 선안나의 일화도 사뭇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에서 중국 공산당 정치엘리트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책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은 대부분 처음 등장할 때만 중국어 발음을 병기하고 이후 우리말 한자 발음으로 표기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 1927-1949#홍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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