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용서[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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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인데 얼핏 들으면 언어유희처럼 들린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용서하는가.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시 공동체가 그들이다.

18세기 초에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아미시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인들을 ‘잉글리시’라고 부른다. 그 잉글리시 중 하나가 2006년 10월 초, 학교에서 수업 중인 아미시 소녀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다섯 소녀가 죽고 다섯 소녀가 크게 다쳤다. 우유를 수거하며 살던 범인은 자살했다.

놀라운 것은 아미시 공동체의 대응 방식이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열세 살짜리 손녀의 시신을 보면서 주변에 있는 젊은이들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 남자에 대해 악한 생각을 하면 안 돼.” 그것은 그 할아버지만의 생각이 아니라 아미시 공동체의 생각이기도 했다. 복수는 그들의 사전에 없고 범인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들은 그 사건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벌벌 떨고 있는 범인의 아내와 부모를 찾아가 안아주며 위로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만큼이나 범인의 가족도 희생자였다. 아내는 남편을 잃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그들은 그 가족에게 꽃과 음식을 가져다주고 각지에서 보내온 성금의 일부를 그 가족을 위해 썼다. 심지어 범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그를 애도했다. 그들에게는 용서가 곧 치유였다.

일부 외부인들은 아미시 공동체의 용서가 너무 빠르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랍비는 그런 악을 용서한다면 악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던 아미시 공동체의 생각은 달랐다. 문명과는 담을 쌓고 아직도 마차를 타고 다니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눈부신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조건#용서#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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