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성희롱 쉬쉬하다간 회사 존폐 위기 맞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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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없는 직장 문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상처와 고통으로만 끝나거나 기업의 일시적 이미지 타격만 견디면 될 일이 아니다. 미국 폭스뉴스는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로저 에일스가 회사 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희롱,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약 7000만 달러(약 84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제 조직 내 성희롱 문제를 경시하는 기업은 까딱하면 존폐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성희롱이 회사에서 쉬쉬하고 넘어가야 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응해야 하는 리스크라는 의미다. 성희롱 사건이 어떻게 기업의 재무적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0년 10월 1호(306호)에 실린 스페셜리포트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성희롱의 대가는 주주에게

성희롱을 포함한 경영진의 부정행위는 주주 가치와 영업 성과를 심각히 훼손한다. 미국 미시시피주립대의 클라인 교수에 따르면 한 건의 부정행위가 발각될 때마다 주주 가치는 즉각적으로 평균 1.6%포인트가 감소한다. 이를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20억 원에 달한다. 부정행위를 한 주체를 최고경영자로 한정할 때 주주 가치 손실은 4.1%포인트(2712억 원)로 껑충 뛴다. 클라인 교수는 주주 가치 훼손의 직접적 원인으로 기업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청렴도 평판을 지목한다. 윤리적 흠결이 드러나면 평판에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 기업의 생산성, 소비,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기업 가치 감소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주가 하락과 같은 부정행위에 대한 시장의 냉정하고 민첩한 평가와 대응은 와인스틴컴퍼니의 추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17년 와인스틴사에서 텔레비전 사업부 하나의 기업 가치는 약 7800억 원에 달했지만, 와인스틴의 성추문이 세상에 알려지고 몇 주가 지나자 한 금융전문가는 이 회사가 최대 40%포인트 할인된 가격에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9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와인스틴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고 폭로했을 때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또 뉴욕 검찰총장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추락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와인스틴사는 부도 신청을 했다.

○ 美, 징벌적 조치로 기업 책임 강화

미국은 2017년부터 세제개혁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성희롱이나 성적 학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배상합의금을 비용 처리하는 것을 불허하는 조항을 골자로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기업은 배상을 할 때 비공개 합의를 할지, 공개 합의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배상합의금을 비용 처리할 수 없고, 후자만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둘 중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본예산결정사항(Capital Budgeting)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업의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개 합의는 변호사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배상 비용의 감세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이 같은 세제개혁법의 시행은 성희롱에 대한 법적 대응을 투명하게 하고 당사자 간 합의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더불어 비공개 합의와 공개 합의를 선택하는 의사 결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 내 성희롱 방지가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인식을 조직에 심어줬다. 또 성희롱 방지와 관련한 정기 교육 훈련, 기업 윤리 강령 제정 등 긍정적 부수 효과도 유발했다.

○ 미투 시대가 남긴 것

미투 시대가 남긴 유산은 성희롱을 방치하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기업들에 각인시킨 것이다. 기업들도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이에 2018년 초부터는 인수합병 계약서에 미투 조항(월가에서는 와인스틴 조항이라고 불림)이 등장했다. 와인스틴의 성폭행 사건이 주요 언론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후, 인수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나 간부급 직원들이 현재까지 특정 기간 내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기업의 신실한 서약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수단은 성희롱 피해자가 전적으로 짊어져야만 했던 엄청난 중압감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이런 조항은 사업 위험을 낮추려는 기업의 사업 전술이라는 한계가 있다. 성희롱을 방지하는 근본적 대책이 되기에도 미흡하다. 하지만 미투 조항은 일회성 대응이 아니라 성희롱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둔 기업들의 공식적 대응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희롱 가해자를 해고하거나 처벌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법 적용이 아니라 미투운동의 정신을 기업의 가장 중요한 위험 회피 수단 중 하나인 인수합병 협약서에 흡수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성희롱 문제는 어마어마한 평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고, 평판 비용은 주주 가치 감소로 직결된다. 성희롱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녹아 있는 기업 지배구조와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충만한 기업 문화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존엄한 길임을 명심하자.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swkwag@sookmyung.ac.kr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성희롱#회사#존폐#성차별#직장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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