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권력만 남았을 때[동아광장/김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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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시작 갈등만 남긴 트럼프식 정치
바이든 최대 과제는 분열된 미국의 통합
무능-불공정 단죄하며 승리한 文 정부
‘여전히 희망인가’ 평가받을 시간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조 바이든이 미국의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철저하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를 냈을 정도로 색깔을 드러낸 바이든·해리스 팀이었지만, 선거 기간 내내 관심을 끌었던 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 각종 기행, 불복 가능성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종 차별과 폭력도 옹호하던 ‘악당’을 워싱턴에서 몰아낸 것만으로도 비정상적으로 쇠락해 가던 최강대국 미국의 국민은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를 통해 ‘악당’을 심판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신성한’ 권력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 ‘악당’이 유권자의 마음을 현혹할 수 있도록 해줬던 조건들이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그의 매력에 마음을 준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 지지자들은 스스로 차별과 폭력의 악당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가 가져야 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정의에 대한 신념과 자신과 지지자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조차도 없었던 ‘악당’이 소란하게 퇴장하고 있다.

모든 정치는 자신의 정치가 민폐가 아닌 희망이 되기를 원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중에 권력을 넣은 후에도 꽤 난도가 높은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며, 대부분의 정치는 역량 부족과 국민 설득 실패로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원래 가겠다고 표방했던 궤도에서 이탈한다. 권력을 잡았다고 하루아침에 내리막길의 경제를 혁신하고 부흥시킬 능력이 생길 리 만무하고, 피폐해져 가는 비루한 삶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뿌릴 매력을 장착할 수도 없다.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통합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호언은 현실의 한 면만을 보는 비뚤어진 관점과 말의 상찬에 둘러싸여, ‘적’이 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게 장벽을 쌓는 일에 몰두한다. 정치에 권력만 남는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정치가 정확하게 그 길을 걸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든 차기 대통령은 무너진 제도권 정치 문법만 복원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 유권자의 마음에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실망과 냉소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괴적 포퓰리즘으로 노출된 갈등과 상처를 어떻게,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강한 확신은 없지만, 바이든·해리스 팀이 미국을 넘어 세계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과거 이력을 보았을 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고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가 복원되고 폭력으로 점철된 인종 갈등의 짙은 그늘에 빛이 들 것이란 기대가 된다.

문재인 정권의 정치는 누구를 닮았는가?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국정 농단을 탄핵을 통해 몰아내고 촛불 정신을 계승해 반쪽의 권력이 아닌 모두의 정치가 되겠다며 출범한 지 3년 6개월이 지났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권력 놀이에 심취해, 경제가 활력을 잃고, 민주주의가 불공정과 불투명으로 쇠퇴하는 동안, 국민 위에 군림한 정의롭지 못한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 우리의 딸과 아들을 눈 뜬 채 바다에 보내야 했던 황망함을 겪게 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단죄였다. 재벌과 결탁해 부정한 재산의 상속을 돕고 자본 위주의 결정에 열중한 불공정에 대한 평가였다. 산업 현장에서 매년 수만 명이 죽는 노동의 현실을 외면한 탐욕에 대한 철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그 주변은 과거 시민사회에서의 헌신을 자산으로 내세우며 희망으로 떠올랐다. 국민의 마음에서 허물어졌던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복원하고 공정한 세상에서 누구나 함께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었다. 대통령 주변의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은 제도권 외부에서 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던 능력을 바탕으로, 보다 투명한 정치를 확립시킬 거란 확신을 줬었다.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문재인 정권이 권력만 남은 정치의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인지 면밀하게 따져보고 서늘하게 책임을 묻기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다음의 정치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2017년과 비교해 더 잘 살고 있나? 정의로운가? 투명한가? 공정한가? 안전한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바이든#대통령 선거#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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