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양도세 대상 확대 공방… “연말 매물폭탄” vs “2년전부터 예고”[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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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원 대주주’ 합리적 해법 없나

최근 열린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는 대주주에게 주식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정부가 내년 4월부터 대주주의 요건을 특정 종목 보유금액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기로 한 데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의원들은 “3억 원을 고집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며 대주주 요건 변경을 유예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년 전에 법과 시행령을 고쳐 정한 사안”이라며 기존대로 추진하겠다고 맞섰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3억 원이면 서울에서 전세도 못 얻는 가격인데 무슨 대주주냐”, “대주주 요건 강화로 연말에 세금 회피용 매도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성토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대주주에 대해서만 국내 주식을 팔 때 양도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한국의 금융자산 과세 체계 때문에 빚어졌다. 현재 대주주가 아닌 일반투자자는 국내 상장주식을 팔아 차익을 얻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세법 개정으로 상장회사 대주주 요건을 코스피 기준으로 2018년 15억 원, 올해 10억 원, 내년에 3억 원으로 점차 강화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상장사 대주주에 속하면 주식 양도차익의 22∼33%(지방세 포함)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정부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보편적 조세 원칙을 내세워 2023년부터는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주식 투자자에게 양도세를 물리는 금융세제 개편 로드맵을 6월 발표했다. 그전까지 과도기적 상황에서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현실과 괴리된 ‘3억 원 대주주’


현재 코스피에 상장된 주식의 지분을 1% 이상 갖고 있거나 종목당 보유금액이 10억 원이 넘으면 대주주로 간주된다. 코스닥시장에선 지분 2%나 종목별 보유금액 10억 원이 넘어야 대주주다.

보유금액을 기준으로 주식 양도세를 매기는 것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처음 주식시장이 개장됐을 때 정부의 과세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아 양도세 대신 과세가 쉬운 증권거래세를 걷는 방향으로 세제가 마련됐다. 그러다 대주주에 한해 양도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상법의 대주주 요건인 ‘지분 3% 또는 보유금액 100억 원 이상’을 소득세법에 그대로 차용했다.

주식 투자자에게 양도세를 물리지 않자 근로소득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소득과의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과세 범위를 늘려왔다. 코스피 기준으로 2013년 7월부터 지분 2% 또는 종목별 50억 원 이상으로 확대됐고 2016년 4월 다시 1% 또는 25억 원 이상으로 바뀌었다. 2018년과 올해 4월 보유금액 기준이 각각 15억 원, 10억 원으로 낮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통상적으로 기업의 대주주라고 인식되는 상법상의 대주주 기준과 세법상 기준이 괴리된 것이다.

논란이 커진 건 내년 4월부터 대주주 보유금액 기준이 3억 원으로 대폭 낮아지면서다. 대주주 여부를 결정할 때 투자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부모, 자녀 등 가족과 합산해서 보유금액을 따진다. 이로 인해 과세 대상이 급격하게 늘어나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종목별 3억 원 이상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약 9만 명으로 10억 원 이상 보유자(약 1만 명)의 9배에 이른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식 투자에 뛰어든 동학개미가 많아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진 점도 반발을 키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주주 요건을 10억 원으로 유지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이어졌다. 한 청원인은 “한국 경제 규모로 볼 때 주식 3억 원 보유로 대주주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며 “(기준이) 3억 원으로 하향되면 (이를 회피하려 연말에) 역대 최대 개인 물량이 나와 패닉장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 청원에는 현재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대주주 3억 (원)에 대한 폐지 또는 유예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홍남기 기재부 장관의 해임을 요청한다”고 올린 또 다른 청원글도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대주주 요건을 3억 원으로 낮추는 방침은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정부는 그해 세법 개정안에 대주주 보유금액을 2021년 4월부터 3억 원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법 개정을 함께 이끌었던 여당마저 동학개미들의 민심 이탈을 우려해 정부를 공격하면서 정책 추진 동력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 금액 기준 과세로 부작용 초래


그동안 특정 종목 보유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주식 투자자에게 조세를 회피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증시의 변동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매년 12월 말 개인 투자자가 대주주에 포함되는지 판단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개인들이 12월에 주식을 팔았다가 1월에 다시 사들이는 행태가 반복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0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상장주식 거래를 분석한 결과, 대주주 요건이 25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낮아지기 직전인 2017년 12월과 다시 10억 원으로 낮아지기 직전 해인 2019년 12월 개인투자자들은 각각 5조1314억 원, 4조823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특히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는 투자자의 거래 행태를 왜곡하고, 투자자도 세금 때문에 거래 비용과 가격 변동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비효율을 초래한다. 세금 부담을 공평하게 하기 위해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만큼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보유금액이 3억 원 미만이면 양도차익이 많아도 세금을 안 내는 반면 3억 원 이상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양도차익에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당장 올 연말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내년 4월 대주주 요건이 3억 원으로 낮아지면 새로 과세 대상이 되는 주식 규모는 4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장)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단일 종목을 3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 보유한 개인투자자의 주식 가치는 41조5833억 원으로 집계됐다. 개인투자자가 보유한 전체 주식 가치(418조 원)의 10%다. 업계에선 이 중 10조∼15조 원이 12월 순매도 물량으로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전면 과세 앞둔 과도기, 합리적 해법 찾아야


정부가 3년 뒤 모든 주식 투자자에게 양도세 과세를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23년부터 국내 및 해외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얻은 이익을 합산해 20∼25%의 세금을 물린다. 대신 국내 주식의 양도소득은 5000만 원까지 공제해주기로 했다. 여당은 이를 내세워 “2023년이면 대주주 요건 자체가 무의미해지는데 왜 2년간 시장 혼란을 자초하느냐”고 지적한다.

정부는 가족 합산 규정을 개인별로 전환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겠지만 보유금액 기준 3억 원 하향은 그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가족 합산 규정만 없애도 종목당 3억 원인 기준이 실제로는 6억∼7억 원으로 완화되는 효과가 있어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신뢰도와 일관성을 중시하는 기재부와 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춘 여당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실리적인 측면에서 대주주 요건 강화를 유예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식 양도세를 전면 과세하겠다는 큰 방향성이 정해졌기 때문에 2년간 대주주 요건 강화를 유예해도 정책 일관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기존 정책대로라면 연말에 회피 매물이 나오는 등 상당한 거래 비용이 발생할 텐데 그에 따른 세수 효과 같은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희준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자산시장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편중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최근 코로나19 등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참여가 활발해졌는데 유동성이 부동산에서 금융으로 옮겨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정부는 연말에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에 맞춰 대주주 요건이 담긴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때 보유금액 요건도 수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결정이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과정에서 동학개미들의 반발을 의식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주식 양도세 공제금액이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뒤집히면서 정부 정책의 신뢰도는 이미 훼손됐다. 또다시 여당의 압박에 정부가 무력하게 물러서는 모양새가 된다면 2023년 주식 양도세 전면 과세 역시 시행을 장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권과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국내 자본시장과 주식 투자자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종=주애진 jaj@donga.com / 강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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