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금융사 대상 익명 홈피 열었더니… “플랫폼 가능한가” 신사업 문의 쇄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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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9개월간 月평균 41건 올라와

“저희 은행이 전광판을 하나 갖고 있는데, 직접 광고를 받아 운영해도 될까요?”

6월 금융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는 ‘금융규제 민원포털’에 올라온 A은행의 익명 민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공세에 직면한 은행의 신사업 고민이었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은 전광판 광고를 옥외 광고사업자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이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업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어렵다는 뜻”이라고 했다.

금융위가 1월 금융규제 민원 포털에서 익명 민원 서비스를 시작한 뒤 쏟아진 문의는 대형 금융사들의 현재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1일 금융위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홈페이지에 접수된 익명 민원은 총 370건으로, 월평균 41.1건이다. 지난해(31.4건) 대비 30.9% 늘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자유롭게 민원을 올릴 수 있도록 금융사의 민원포털 접속 아이디를 익명 처리했다”며 “올해 올라온 민원의 대부분이 익명 민원이며 신사업 관련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익명 민원은 금융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빅데이터, 간편 이체 서비스 등 신사업 관련 규제 개선 등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화두는 빅테크와 핀테크 관련 대응이 주를 이뤘다. B은행은 “고객의 통장 비밀번호만으로 이체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개선하려는데 이것이 법령상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봐도 될지” 문의했다. 핀테크 기업들의 간편 이체 서비스 장악을 막으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젊은 고객층을 잡기 위해 ‘카카오페이’ 등 새로운 인증 방식을 도입하고, 저축 예금 계좌 해지 등 다양한 은행 업무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질의하기도 했다.

카드업계도 고유의 영역을 넘어 플랫폼 사업자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C카드사는 비금융권 회사와 함께 ‘빅데이터 플랫폼 법인’을 설립하고 지분을 확보하는 데 금융당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한지 문의했다. 또 신용카드 앞면에 카드사의 회사명이나 로고 대신 제휴사 로고만을 표현하는 것이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위반되는 것인지도 궁금해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핀테크 업체들의 플랫폼 장악과 기존 카드업계와의 제휴 서비스 강화 등이 사업 영역을 축소시키고 있어 카드사들의 고민이 깊다”고 전했다.

저금리 기조 속 수익성 악화, 자동차보험 손해율 증가 등에 직면한 보험업권은 신사업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하거나 손실을 줄이려는 모습이었다. D보험사는 고객의 질병·상해 등 수집 정보를 다른 회사들이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E보험사는 고령 운전자가 의무 교육일자를 넘겨 보험에 가입하려 한 경우 할인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지 물었다.

이 같은 민원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도 신사업이나 업무 개선을 위한 규제 개혁을 돕는 모양새다. 최근 금융사들의 상시 재택근무를 허용한 내·외부 망 분리 지침이나 비대면 보험 영업 및 자영업자 대상 카드사의 주말 긴급 대출 허용 등의 규제 개선 사례는 금융사들의 민원을 검토하고 내놓은 대책들이다.

금융권에서는 익명 민원을 통해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길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조치는 2016년 514건에서 2019년 204건으로 줄었다.

김동혁 hack@donga.com·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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