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다시 차벽, 공권력 총동원 봉쇄 맛 들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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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어제 서울 광화문광장에 개천절 때처럼 보수단체 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 차벽이 또 설치됐다. 개천절 때 차벽과 불심검문에 대해 거센 비판이 제기됐는데도 아랑곳없이 경찰력 총동원이라는 ‘손쉬운 방법’에 또다시 의존한 것이다.

경찰은 어제 개천절 때 과잉대응 논란을 의식한 듯 광화문광장을 피해서 주변 도로변에만 차벽을 설치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전철을 세우는 대신 광화문광장 방향 출구만 막는 방식으로 통제 수위를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부근을 지나는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일일이 통행 이유를 묻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불심검문은 계속됐다.

광화문 부근을 지나는 차량들은 앞뒤 창문을 내린 채 지나가도록 했다. 게다가 종로 쪽 도로의 차로를 한 개로 줄여버려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군중집회를 막는 것과 종로의 차로를 줄이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과잉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찰과 통행 제지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코로나19 방역에 온 국민이 합심하고 있는 시기에 대규모 집회 개최에 대해선 많은 국민들이 부정적이다. 정권 비판이 아무리 절실하다고 해도 방역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더 안전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지지를 넓힐 수 있다. 그렇지만 차벽 설치와 불심검문이라는 물리력으로 집회 봉쇄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부의 대응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위험한 행태다. 더구나 이런 식의 과잉대응에 대해 보수·진보 진영 구분 없이 많은 이들이 비판과 우려를 제기했는데도 이 정부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물리력 동원이라는 권위주의 시절의 단맛에 중독되어 가는 징후 아닌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방역을 위해 일정한 제한을 가한다 해도 공권력은 최대한 절제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이다. 경찰을 비롯해 이 정부의 공권력 집행 책임자들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되고, 국민으로부터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청와대에서만 칭찬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어든 것 아닌지 우려된다.
#한글날#보수 단체 집회#경찰 차벽#광화문#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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