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황금광시대’, 현재와 묘하게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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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展 8일 개막
금광열풍 풍자한 당시 신문-잡지
부동산-주식 광풍 현재와 오버랩
1920년대 경성 관련 기록 토대로 서울 재해석한 설치작품들도 전시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2층 전시실에 걸린 일민미술관의 근현대 회화 소장품. 박영선, 서세옥, 장욱진, 김환기, 남관, 박수근 등 한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일민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2층 전시실에 걸린 일민미술관의 근현대 회화 소장품. 박영선, 서세옥, 장욱진, 김환기, 남관, 박수근 등 한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일민미술관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최장의 장마까지 2020년은 이상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그럼 100년 전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한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전은 지금과 기묘하게 닮은 1920년 경성을 광화문사거리로 소환한다.》

황금광시대 전시의 뼈대는 신문 잡지 같은 인쇄매체다. 1920, 30년대 발행된 이들 매체의 기록을 재해석해 전시실 3곳에서 모두 5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출발은 잡지 ‘삼천리’에 실린 목병정의 글 ‘삭주 금광 채광관’이다. 이 글은 당시 경성을, 조선을 ‘황금광시대’라고 부른다.

‘지금 조선은 그야말로 황금광시대다. … 눈코 박힌 사람이 두셋만 모여 앉은 자리에서 금광 이야기 나오지 않는 곳이 없으리만치 금광열(熱)이 뻗치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한반도에 불어닥친 금광 열풍을 기록한 신문과 잡지에서는 말 그대로 ‘황금에 미친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풍자와 세태가 보인다. 코로나19로 경제는 거꾸로 성장하는데,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광풍이 부는 현재와 묘하게 닮았다.

권하윤 작가의 가상현실(VR) 애니메이션 ‘구보, 경성 방랑’. 일민미술관 제공
권하윤 작가의 가상현실(VR) 애니메이션 ‘구보, 경성 방랑’. 일민미술관 제공
각 전시실은 현대 미술가들이 1920년대 기록을 토대로 서울의 현재 모습을 재해석한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1전시실에는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뮌(MIOON)의 설치 작품 ‘픽션 픽션 논픽션’이 자리 잡았다. 2전시실에서는 안무가 이양희가 100년 전 가상의 카바레 공간을 재현한 ‘클럽 그로칼랭(열렬한 포옹)’에서 안무를 선보인 영상 작품 ‘연습 NO.4’와 ‘언더그라운드 카페’가 전시된다.

이 작품 뒤쪽으로 “참된 삶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소신을 지녔던 일민 김상만(1910∼1994)의 컬렉션 중 회화 작품 50여 점이 설치됐다. 김환기의 ‘학 구성’(1957년)과 박수근의 ‘제비’(1960년대), 남관의 ‘동양의 환상’(1962년)부터 황용엽의 ‘인간’(1985년) 등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인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 청자, 표암 강세황(1713∼1791) 화첩 등도 볼 수 있다.

3전시실에는 소설가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2017년)를 전시로 구현했다. 이 소설에는 1922년 창간된 잡지 ‘신여성’의 편집장이자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인 허정숙이 등장한다. 이에 착안해 전시 공간은 신여성의 1920년 편집실을 재현했고 소설 속 세 여자 이야기에 관한 기록과 소품으로 연출했다. 또 권하윤 작가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토대로 만든 설치 작품 ‘구보, 경성 방랑’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인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은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을 유머러스하게 설치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던 일민미술관의 숨은 공간을 엿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건물이 지어진 1926년 모습 그대로를 확인할 수 있다. 12월 27일까지. 5000∼7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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