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균서 재활용까지 디자인의 진화… 코로나와 공생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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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상황 상정하고 3주내 집에서 試作품 만들라”했더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황 속에 폐점한 가게 간판 글씨를 음각한 틀로 만든 케빈 막의 가정용 칵테일 얼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황 속에 폐점한 가게 간판 글씨를 음각한 틀로 만든 케빈 막의 가정용 칵테일 얼음.
프랭크 추의 소지품 간편 살균 램프.
프랭크 추의 소지품 간편 살균 램프.
품귀 현상을 빚은 물품을 박 제화한 케이시 웡의 ‘코로나19 조각’.
품귀 현상을 빚은 물품을 박 제화한 케이시 웡의 ‘코로나19 조각’.
줄리&제시 스튜디오 의 ‘포켓 정원’은 스펀지, 접착제, 작은 도기를 사용해 중국 산수화 속 기암괴석을 본떠 만든 미니어처 장난감이다. 레고 블록과 함께 갖고 놀 수 있다.
줄리&제시 스튜디오 의 ‘포켓 정원’은 스펀지, 접착제, 작은 도기를 사용해 중국 산수화 속 기암괴석을 본떠 만든 미니어처 장난감이다. 레고 블록과 함께 갖고 놀 수 있다.
케이 챈이 밀가루 반죽으로 구워 자연 분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일회용 식기. DESIGN TRUST HK, PLUG 제공
케이 챈이 밀가루 반죽으로 구워 자연 분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일회용 식기. DESIGN TRUST HK, PLUG 제공



인간은 늘 예고 없는 환경 변화에 힘겹게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려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작업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홍콩 소호하우스에서 21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열리는 ‘디자인 트러스트: 크리티컬리 홈메이드’전(展)은 돌변한 환경을 마주한 건축과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해법을 물어본 전시다. 주최 측은 “위태롭게(critically) 자가 격리된 상황을 상정하고 3주 안에 집에서 제작한 소형 디자인 시작(試作)품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건축가와 디자이너 130여 명이 각각 팀을 이뤄 글로벌 감염증 대유행 시대의 생활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을 담은 제품 70여 가지를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현 시점의 어려움을 감안해 사회 교육 환경과 관련된 실용성을 지닌 아이디어여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홈페이지를 통해 각 제품을 관람할 수 있다.

마이클 영이 출품한 ‘항균 도어 핸들’은 외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조심해도 무심코 만진 문손잡이에 남은 타인의 체액에 닿을 위험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물기가 남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연꽃잎 표면의 거칠거칠한 소수성(疏水性·물과 분리되려는 특성)의 재질을 제품 표면에 적용해 레이저 절삭기로 가공한 금속제 문손잡이다.

케이시 웡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었던 생활용품을 투명 합성수지 안에 화석처럼 굳힌 조각 장식품을 내놓았다. 손소독제, 라면, 화장지, 마스크 등을 액체화된 수지와 함께 형틀에 넣어 굳힌 후 보석과 닮은 형태로 재단하고 표면을 광택 처리했다. 웡은 “평소에 당연한 듯 마구 쓰던 물품의 존재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프랭크 추 스튜디오의 ‘살균 램프’는 외출 후 오염됐을지 모르는 물품을 소독하는 작업의 번거로움을 줄이고 미적 여유를 보탠 제품이다. 휴대전화나 열쇠를 램프 받침에 올려놓고 동그란 램프 갓을 아래로 누르면 은은한 자외선 광원이 작동된다. 바닥 면에서 나온 자외선이 갓 내부 표면에 난반사돼 60초 동안 소독한 뒤 상단부가 자동으로 튀어 올라온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급격히 늘어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보자는 취지의 아이디어도 나왔다. 케이 챈의 ‘당신의 칼을 구워라’는 테이크아웃 또는 배달 음식과 함께 제공되는 플라스틱 식기 대신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들어 자연 분해되도록 한 식기를 쓰는 방식을 제안했다. 케빈 시우와 AaaM 건축사무소가 제작한 ‘캔 플레이’는 빈 음료수 깡통에 장착해 장난감 블록처럼 재활용할 수 있는 밴드형 걸쇠다.

영업이 안 돼 폐점한 동네 가게에서 주운 건축 폐기물을 활용한 제품도 있다. 플로리언&크리스틴 디자인 스튜디오는 자갈, 시멘트와 유리 조각을 모아 잘게 부순 뒤 골재로 쓴 벽돌을 만들었다. 이들은 “당면한 위기에서 발생한 잔해를 새로운 재건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머리사 이우 디자인 트러스트 공동설립자 겸 총괄디렉터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시대의 새로운 필요에 부응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자가격리#코로나19#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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