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젠 ‘순위 압박’서 벗어나자[동아 시론/이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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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역사 바꾼 BTS 빌보드 1위
일회성 아닌 만큼 위상 상승 기대
팬덤 업은 ‘족집게 전략’은 아쉬워
현지화 전략 등 정공법으로 승부하길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는 K팝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거대한 사건이다. 빌보드 1위가 갖는 상징성이 그만큼 크다. 빌보드는 미국 내 히트 순위를 가리는 차트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음악 시장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1위는 곧 세계 정상을 의미한다. 단순히 판매량에서만 상징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미국엔 최고로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모여든다.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같은 거장들도 모두 미국 출신이다. 이런 세계적인 무대에서 방탄소년단이 1위를 거둔 것이다.

빌보드 1위는 그동안 K팝이 숙원해 오던 순위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 이전에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7주 연속 2위에 머물렀다. 그때는 ‘강남 스타일’의 최대 강점이었던 유튜브 조회 수가 빌보드 성적에 반영되지 않을 때라 더욱 아쉬움이 컸다. 그 숙원을 이번에 ‘Dynamite’가 풀어준 것이다. 그것도 2주 연속으로.

이제 세계 음악 시장은 한국을 단순히 주변국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연에 의한 일회성 히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처음으로 싱글 차트에 오른 후 조금씩 순위를 높여 지금에 이르렀다. ‘Dynamite’ 2주 차 1위 때는 13위에 블랙핑크의 ‘Ice Cream’도 올라 있었다. K팝을 단순히 방탄소년단 현상으로 환원할 수 없다. 방탄소년단과 비슷한 콘셉트와 전략을 쓰는 다양한 아이돌과 기획사들 역시 한국에 많아 제2의 ‘Dynamite’를 기대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만큼 중대한 국면에 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도 있다. 지금의 K팝이 팬덤형 히트라는 한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1위는 스트리밍에 비해 다운로드 비율이 높았다. ‘Dynamite’의 2주 차 성적을 보면 다운로드 18만 회에 스트리밍 1700만 회였다. 요즘은 스트리밍 시대라 다운로드를 많이 받지 않는다.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끄는 팝송인 카디 비의 ‘WAP’는 첫 주 성적이 다운로드 12만 회에 스트리밍 9000만 회였다. 이 정도 비율이 설득력 있다. 스트리밍에 비해 다운로드 비율이 높다는 건 일반적인 청취 방식을 벗어난 팬덤형 히트라는 뜻이다.

게다가 ‘Dynamite’는 오로지 1위를 위한 족집게 전략으로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는 리믹스와 원곡을 하나로 합산해 차트를 발표한다. 그리고 방탄은 원곡 발표와 비슷한 시점에 리믹스를 4곡이나 냈다. 다른 음악들은 엔진 한 개로 달리는데 ‘Dynamite’는 엔진 다섯 개로 달린 셈이다. 다운로드 가격도 통상 1.29달러가 아닌 0.69달러로 설정했다. 싼 가격에 여러 버전을 내놓고 대규모 팬덤이 내려받은 것이 이번 1위의 동력이었다.

물론 이것이 부정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대중음악 기획자들은 ‘Dynamite’의 1위를 두고 K팝의 음악적 가능성보다는 팬덤형 히트의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열성적인 고정 팬을 확보하는 것이 히트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정신이 됐다고 판단할 것이다. 주변국이었던 한국의 음악이 세계 정상에 등극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 강도로 이 트렌드가 와 닿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긍정적 충격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슈퍼엠이 지난해 말 번들 판매 방식으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가 구설에 올랐다. 번들 방식이란 콘서트 티켓이나 굿즈를 사면 앨범을 증정하는 것을 말한다. 팬덤이 강력한 가수들이 선택하는 차트 올림 방식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많다.

선례가 있으면 모방이 나오기 마련이다. K팝 가수들이 앞다퉈 ‘Dynamite’를 참고해 미국을 공략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물론 비주류인 K팝이 그들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이 어려운 줄은 안다. 하지만 정상까지 거머쥔 지금 순위에 대한 압박은 덜어내고 좀 더 정공법으로 승부하면 어떨까. 영어 노래 발표 같은 현지화 전략은 확대하되 순위만 노리는 판매 전략은 지양하면 좋겠다. 이런 방식의 차트인이 계속되면 K팝에 대한 이미지가 하락하고 애써 높인 순위 역시 히트의 정도가 아닌 팬덤의 규모로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K팝의 상승 동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제는 K팝의 다음 국면을 준비해야 한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k팝#bts 빌보드 1위#순위 압박#현지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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