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다리’ 건너… 흑인 인권운동 대부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존 루이스 前의원 운구마차
1965년 유혈사태 현장 찾아
바닥엔 장미꽃… 경찰은 거수경례

26일(현지 시간)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의 운구 마차가 앨라배마주 셀마시의 에드먼 드페터스 다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셀마=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의 운구 마차가 앨라배마주 셀마시의 에드먼 드페터스 다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셀마=AP 뉴시스
17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전 미국 하원의원(80)이 55년 전 경찰의 곤봉 세례를 맞았던 다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찾았다.

루이스 전 의원의 시신을 실은 운구마차는 가족과 시민들의 애도 속에 26일 오전 앨라배마주 셀마시의 에드먼드페터스 다리를 천천히 건너갔다. 이 다리는 1965년 3월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평화 행진을 하던 흑인들을 경찰이 유혈 진압한 ‘피의 일요일’이 일어난 장소다.

당시 25세였던 루이스 전 의원은 이 행진을 주도하다가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해 두개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흑인이 받는 차별과 설움을 전 세계에 알려 인권운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방안이 미국에서 도입된 것도 이 행진이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역사적인 현장의 분위기는 55년 전과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는 경찰이 600여 명의 흑인들을 잔인하게 때려 다리에 붉은 핏자국이 흥건했지만 이날은 경찰이 거수경례를 하면서 경의를 표했고 바닥에는 붉은 장미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시민들은 운구마차가 지나갈 때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흑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두 마리의 말과 검은색 차체, 적갈색 바퀴 등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장례식에 사용됐던 운구마차와 같은 모양으로 마련됐다. 1986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루이스 전 의원은 매년 이 다리를 찾아 ‘셀마 행진’을 재현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 50주년이었던 2015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함께 다리를 걸었다.

루이스 전 의원의 사망을 계기로 에드먼드페터스 다리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금 다리의 이름은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의 간부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이스 전 의원의 장례 절차는 30일 킹 목사가 설교하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교회에서 마무리된다. 그때까지는 워싱턴의 의회의사당에 그의 시신이 안치돼 추모 행렬이 이어질 예정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존 루이스 전 미국 하원의원#셀마 다리#별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