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한 땀 한 땀’은 맡기면 되는 시대[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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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도 열어가는 D2C 시대… 기존 제조업체들의 미래는 어디에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나이키는 지난해 11월 아마존에서 더 이상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자사의 온·오프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판매하는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뱃살 잡아주는 요가복을 판매하는 업체는 당연히 스포츠 의류로 브랜드를 확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휴대용 손 소독제와 변기 소독제, 다이어트용 도시락을 판다. 그리고 이 회사가 앞으로 무슨 제품을 더 판매할지는 아무도, 심지어 경영자도 모른다. 아직은.

얼핏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알고 보면 하나의 키워드가 관통한다. ‘유통 4.0 시대’, 혹은 ‘제조업 4.0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나이키가 밝힌 아마존을 떠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소비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외국 기업 특유의 뜬구름 잡는 묘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D2C(Direct to Consumer)라는 요즘 ‘핫한’ 마케팅에 다걸기 하겠다는 선언이다.

D2C 마케팅의 정체는 요가복 업체의 사례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브랜드X라는 기업으로 8월 중 증시에 상장될 예정이다. 20, 30대를 타깃으로 ‘건강한 경험’이 중심이 되는 2만, 3만 원대의 물건을 파는데 2012년에 출범해 겨우 8년 됐다. 그런데 이 회사 매출액이 지난해 640억 원이었고, 올해는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놀라운 건 작년 영업이익이 99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약 15%였고 올해는 영업이익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제조업체이면서도 유통업체다. 제품 샘플실은 있는데 공장은 없다. 시설 투자, 인력 채용에 투자하지 않으니 몸집은 가볍다. 강력한 연구 인력을 끌어와 제품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중간 유통단계 없이 소비자와 직접 대면한다. 강민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들은 경험이 중요하다.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우선 영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반응이 좋은 제품을 더 많이 파는 게 우리의 전략이다. 물론 20, 30대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가격대의 좋은 제품이 필수다.”

기존 제조업체들은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이를 판매하기 위한 유통구조를 갖춰서, 때론 억지 밀어내기로 판매 완수를 위한 지난한 레이스를 펼친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제조업체들은 ‘경험’을 판다. 다품종 대량생산 대신 타깃 소비자층이 좁다 보니 제품 기획에 훨씬 많이 투자한다. 사이즈별로 모델들이 직접 요가복을 입어 보거나 손 소독제를 써 보고 보완한다. 샘플실의 정교한 경험이 다시 제품으로 팔린다. 유통 혁신이 제조업의 근본을 바꾸고 있다.

시중에는 이런 D2C 마케팅 강자가 수십 개다. 제조업 4.0 시대를 열고 있는 이런 회사들이 클 수 있는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조강국 코리아’다. “대한민국은 제조업 역사가 길고 품질이 우수해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세계 최고다. 중국보다 우리가 D2C 마케팅으로 우수한 제품력을 선보일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말하자면 ‘장인의 한 땀 한 땀’은 OEM에 맡기는 대신 특정 계층을 타깃 마케팅하고 필요한 제품을 발굴하는 역량만 키우면 누구나 ‘스타 기업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기존 제조업체들은 이제 미래를 어떻게 도모해야 하나. 어떤 대기업은 이런 업체들 중 하나를 채용해 4.0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브랜드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누구는 아예 이런 곳에 투자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앞당긴 4차 산업혁명의 무시무시한 속도는 기업들에 생존의 화두를 더 크고 무겁게 던지고 있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장인#나이키#제조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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