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새 당명에 ‘민주’ 들어가면 어떤가[광화문에서/길진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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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당명은 민주당이 괜찮은데 저쪽이 가져가 버려서….”

지난달 9일 미래통합당이 당명 개정 계획을 공식 발표한 직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 앞에서 불쑥 던진 말이다.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진 못했다. 정치적 무게가 실린 발언이 아니라 김 위원장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얼마 뒤 김 위원장은 “백종원 씨는 어때요?” 한마디로 차기 대선 후보의 이미지에 대한 새 화두를 던졌고, 다른 주자들은 동요했다. ‘당명은 민주당이 괜찮은데’ 역시 그냥 웃고 넘길 발언은 아닌 듯하다. 대체 왜 민주당을 거론한 것일까.

김 위원장이 탐내는 ‘민주(民主)’라는 당명은 우리 정당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 중 하나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2028년이면 창당 200주년을 맞는 미국 민주당은 물론이고, 상당수 국가 정당에서 ‘민주’라는 당명을 단독으로 혹은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당의 이상적 이미지와 ‘민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3김(三金) 시대 때 김영삼(YS)은 통일민주당, 김대중(DJ)은 평화민주당, 김종필(JP)은 신민주공화당을 만들어 한 시대의 정치를 이끌었다. 1990년 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YS, JP가 3당 합당을 통해 탄생시킨 정당이 민주자유당이다. 통합당은 그 후신이다.

통합당의 변신 작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 2년 만의 당사 여의도 복귀 계획을 발표했다. 다음 달 초 당사 이전과 맞물려 새 당명과 당색, 로고도 발표한다. 대통령 탄핵과 4차례에 걸친 전국 단위 선거 패배의 사슬을 끊어내고, 영광의 시대를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게다. 하지만 비슷한 시도가 예전엔 없었던가. 새누리당 문을 닫고 2017년 출발한 자유한국당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올 2월 문을 연 통합당은 다음 달까지 6개월 시한부다. 본질적 변화 없는 잦은 포장 바꾸기는 ‘저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도 될까?’ 하는 중도 진영의 불신만 더 키울 뿐이다.

김 위원장 리더십의 키워드는 ‘실용’ ‘변화’ ‘속도’다. 때때로 ‘반전’의 카타르시스가 더해진다. 보수정당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활로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만큼 놀라운, 그런 ‘혁신적 변화’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겉모습은 물론이고 시대에 맞게 당의 골수까지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당 내부를 관통하는 노선과 정체성까지 다시 정립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당 정강·정책에 민주화, 5·18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등의 내용을 넣으려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구도의 관점에서 볼 때 3당 합당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탄생은 반공과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온 ‘구시대 보수’가 YS의 ‘중도 개혁’ 세력과 손잡은, 보수진영의 외연을 중도까지 확장시킨 놀라운 변신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보수정당의 새 당명에 다시 ‘민주’가 등장하면 또 어떤가. 분명한 건 우리 정치에선 보수건 진보건 외연을 더 넓히고, 의제를 선점하고, 상대 진영의 가치를 과감히 수용하는 쪽이 더 번성했다는 점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민주당#미래통합당#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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