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스파이 전쟁 [횡설수설/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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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포츠담 정상회담의 막바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다가가 넌지시 “비범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인데, 스탈린은 무심한 듯 대꾸했다. “기쁜 소식이군요. 잘 사용하기 바랍니다.” 질문도 없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스탈린이 깨닫지 못한 게 틀림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탈린은 미국이 언제 그 사실을 털어놓을지 기다리고 있었다.

▷트루먼이 두 달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망 때까지 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까맣게 몰랐던 극비 프로젝트를 스탈린은 이미 오래전부터 훤히 알고 있었다. 미국 곳곳에 심어놓은 스파이망 덕분이었다. 그리고 4년 뒤 소련은 보란 듯이 핵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절대무기 독점을 무너뜨렸다. 아무리 극비에 부친 최첨단 기술이라도 영원한 독점은 불가능하다. 결국엔 시간의 문제이고, 그 격차를 지키거나 좁히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자체 개발하거나 사는 게 아니라면, 특히 판매는커녕 접근조차 거부당한다면 추격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해커나 스파이를 이용한 도용과 절취일 것이다.

▷전방위로 격화되던 미중 경쟁은 이제 극한적 외교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총영사관 폐쇄를 전격 통보했고, 중국도 맞대응 조치를 경고했다. 미국은 휴스턴 총영사관을 ‘연구 도둑질의 진원지’ ‘거대한 스파이 소굴’이라고 지목했다. 일찍이 “그 나라 유학생은 다 스파이”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억 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원의 입국 금지까지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분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지만, 중국의 거침없는 대외 공작활동이 그 빌미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 즉 간첩·밀정의 활용을 승리의 요체라며 거기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포섭과 매수, 역이용, 심리전, 침투라는 5대 첩보활동 유형도 제시했다. 중국의 대외전략이 첩보활동을 넘어 회유와 협박, 여론조작을 통해 비밀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른바 ‘샤프(날카로운) 파워’에 비유되는 것도 2500년 된 손자병법식 대응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술전쟁의 시대에 외교와 첩보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지만, 부국강병을 넘어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엔 그 경계가 아예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중국인들도 새삼 되돌아볼 때가 됐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美中#스파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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