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소설보다 훨씬 스릴러같다, 해결이 안되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소설집 ‘화이트호스’ 펴낸 강화길 작가

결혼 후 시가의 첫 제사에 참석하게 된 신혼부부. 아내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미묘하게 불편한 분위기를 직감한다. 이 가정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계의 불균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무신경하고 태연한 걸 넘어 완전히 무지하다. 그는 표면적인 관계 뒤편에 숨은 편애와 차별을 알 필요도, 이해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강화길(34·사진)의 ‘음복’은 가족 속 가부장적 권력관계를 긴장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한 가정의 평범한 제삿날 풍경을 소재로 남성들이 점유한 ‘무지의 권력’이 노출되기까지를 서스펜스 넘치게 그려낸다. 등단 8년 차이자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받은 그의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호스’(문학동네)에는 이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꼬리를 무는’ 일상의 스릴러가 가득하다.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는 “스릴러 소설보다 일상이 더 불안하다고 느낀다. 결말이나 해결 없이 일상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 불안을 안고 문 밖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살육, 혈흔이 넘치는 장면에서가 아니라 가족, 사람들의 관계 속 불안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애거사 크리스티, 코넌 도일을 좋아했고 미드(미국 드라마)도 ‘크리미널 마인드’ ‘콜드 케이스’ 같은 수사물만 집중적으로 봤단다. “사건이 해결되는 데서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스릴러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 문법을 빌려오긴 하지만 일상은 사건이 깨끗이 마무리되는 장르소설과는 다르다. 평범한 사람들, 상황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은 왠지 본격 스릴러나 호러보다 더 서늘하다.

표제작 ‘화이트호스’는 가장 애정을 가진 작품이다. 호러 색채가 물씬한 이 단편은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산속 깊은, 기괴한 산장에 머물면서 겪는 일을 그려낸다. 끔찍한 죽음, 실종 등이 빈번했던 이 산장은 작가들의 창작숙소로 활용되는데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실종된 작가의 유품과 툭하면 울려 퍼지는 의문의 초인종 소리 가운데서 화이트호스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소설가의 삶에 망령처럼 떠도는 화이트호스는 무엇일까. 영감이나 멋진 이야기, 작가적 성공 혹은 평단의 갈채나 세간의 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화이트호스는 필요 없다고 외치는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다”며 “장편문학상을 수상한 뒤 여러 비평에 직면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여성 서사를 주요하게 다루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는 “작가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젠더 부조리나 계급, 여러 사회문제와 맞닿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여성 서사는 끊임없이 있었는데 유독 요즘 화제인 건 오히려 지금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걸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화이트호스#강화길 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