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턴 기업’에만 혜택 주려 하나[동아 시론/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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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각국 리쇼어링 각축전
글로벌 생산성-소득 후퇴로 韓수출 타격
보조금 중심 국내 유턴정책 효과도 의문
기업 전반 경쟁력 높이는 전략 고민해야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해 7월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적용하는 규제를 강화했다. 관련 소재 공급을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 기업들은 즉시 충격을 받았다. 이에 맞서 한국 소비자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일으켰고, 한국 정부는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을 통해 수입 대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섰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금번 코로나 사태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 의료용 방호복, 진단키트 등 신종 전염병 대응에 필수적인 물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오던 많은 국가가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에 처하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일본에 당한 한국처럼 너도나도 제조업의 ‘리쇼어링(Reshoring·본국 회귀)’을 코로나 경제대책의 1순위로 거론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중 무역 분쟁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던 차에 범세계적인 코로나발(發) 리쇼어링 움직임은 글로벌 시장구조의 급속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대외 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한국 경제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글로벌 리쇼어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한국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리쇼어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한일 무역 분쟁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먼저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급한 불을 껐지만 ‘소부장’ 기술 개발과 국산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R&D가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 사이 한국 기업들은 더 비싸거나 더 낮은 품질의 부품을 써야만 한다. 상대국인 일본은 어떤가. 한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며 일본 기업들의 실적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다. 일례로 LG디스플레이에 불화수소를 공급하는 한 일본 회사는 수출 규제의 여파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 급감했다고 한다. 즉, 무역 분쟁으로 인해 한일 양국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글로벌 리쇼어링의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각 나라가 자국의 제조업 수요 조달을 해외에서 국내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악화되면서 세계 시민의 소득과 생활수준이 함께 후퇴할 것이다.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한국 경제는 그만큼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미 코로나 충격으로 4월과 5월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가량 감소했다. 향후 탈(脫)세계화가 가속화되면 더 힘든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때마침 정부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한국판 리쇼어링을 들고 나왔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경우 법인세 감면, 입지·시설투자 보조금 등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발효됐으나 효과가 미미했던 소위 ‘유턴법’을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국내의 온갖 반(反)시장적 정책에 떠밀려 해외로 빠져나갔다. 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떠난 기업이야 그렇다 쳐도 국내 정책 환경이 아쉬워 탈출한 기업을 되돌리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리쇼어링 정책은 그 원칙과 효과에서 여러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 가지 문제는 정책의 주요 내용이 세금이 투입되는 보조금 형식의 단기 지원이라는 점이다.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인건비, 임차료, 세금 등 기업의 비용을 줄여줘야 한다. 보조금은 비용을 원천적으로 절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들과 분담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투입된 자원이 다른 곳에서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기회를 막고 글로벌 시장에서 다른 국가들과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긴다.

인센티브 대상을 왜 유턴 기업으로 국한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은 미국이나 여느 유럽 국가처럼 제조업이 취약하지 않거니와 몇몇 규제만 풀어줘도 고용과 생산을 늘릴 다른 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런 마당에 굳이 해외 진출 기업에만 선별적 혜택을 제공한다는 정책의 취지를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리쇼어링 문제의 근원에는 한국 경제 전반에 걸친 경쟁력과 생산성의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특정 기업보다 전체 시장 환경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제라도 좀 더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탈세계화 시대를 돌파할 국가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유턴 기업#리쇼어링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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